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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친한 친구와 이 작품의 영화를 보러 갔다가 <트랜스포머 3> 군단에 밀려 결국 그냥 돌아왔습니다. 너무 강력한 군단 탓일까요, 아니면 저희의 게으름(?) 탓일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게으름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맞출 수 있는 시간은 오늘 뿐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영화명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팬더와 그의 친구들+ 로보트들만이 온 극장가를 차지하고 있더이다. 뒤늦게 다른 곳에서는 아직 상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움직이기에는 우린 너무 지쳐있었답니다. 책을 읽고 그 희열에 몸을 부르르 떨었던 저로서는 로보트군단도 흥미롭긴 했지만 어쩌면 좋은 영화 한 편을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영화는 확실히 극장에서 보는 맛과 집에서 DVD로 감상하는 맛이 다르다는 것이 저의 생각.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제가 이 책을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읽고 나서 또 '아구, 안 읽었으면 아까워서 어쩔 뻔 했어!'를 외칠 거라는 것도요. 작품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었지만 표지가 주는 첫인상만 보고 제 맘대로(그야말로 제 맘대로!) '으흥, 마피아나 갱단이 나오는 소설 아냐? 이런 건 관심없어!'라며 일찍부터 한 구석으로 치워두었기 때문이죠. 그건 어쩌면 주인공 탓인지도 모릅니다. (에헴!) LA의 뒷골목 범죄자들을 주로 변호하면서 그들의 너저분한 돈을 받아 부를 챙기려는 변호사 미키 할러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죄를 정말 지었는지 어쨌는지는 관심없고 오로지 어떤 판결을 받느냐에만 온 관심을 쏟아붓는 그에게, 어느 날 일생일대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역시나 거대 돈을 찾아 오늘도 눈을 희번득하던 미키 할러 앞에 할리우드의 초거대 부동산 업자 루이스 룰레가 찾아옵니다. 여성을 강간, 폭행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그는 미키에게 변호를 요청해요. 또 역시나 그가 했는지 어쨌는지는 둘째고 그가 가진 부를 통해 한밑천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미키는 증거를 모아 재판준비를 합니다. 그런 그 앞에 드러난 과거 어느 사건의 진실. 어쨌거나 법정소설인만큼 다른 스릴러에 비해 액션은 조금 약한 편이지만 법정에서 '치고 빠지기' 전술을 구사하는 상황은, 가슴이 두근두근할만큼 긴장감 있었습니다. 과연 무엇으로 범인을 무릎꿇게 만들고 이 상황을 타개할 것인가도 중점이 되겠지만, 빠른 속도로 읽히는 재판장면은 정말 재밌었어요.
미키 할러는 깨끗한 변호사는 아니에요. 법과 정의보다 자신이 벌어들일 수 있는 돈과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집착하는 속물 중의 속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말 죄를 지었는지 아닌지에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얄미운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변호사도 세상에는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변호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악하지 않아, 매기. 유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악한 건 아니라고. 무슨 뜻인지 알지? 차이가 있어. 그 친구들의 말을 듣고 노래를 들으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게 돼. 그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려고 한 것뿐이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거라고. 그 중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치들도 있고. -p274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대목을 보는 순간, 어쩌면 미키 할러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같은 변호사의 모습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키 할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고한 의뢰인, 그리고 그 무고한 의뢰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가 변호해온 주 고객은 가볍든 무겁든 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어요. 뒷골목 범죄자들. 그런 그들에게서 검은 돈을 받아냄으로써 무고한 의뢰인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마음 한 구석에서는 더러운 돈을 받는 자신의 모습과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어떻게든 삶을 살아내려 하는 인간의 본질에 눈뜬 것일지도 모르죠. 돈에 눈이 멀어 받아들인 루이스 룰레 사건도 있었지만. 그가 실제인물이 아니니 뭐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러했답니다.
매튜 매커너히가 등장한 영화는 많이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만큼은 나중에 DVD로라도 꼭 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원래 라이언 필립에 쪼콤 더 관심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과연 매튜가 검은 돈을 받는 미키 할러의 뺀질함과 법정에서의 멋진 장면을 어떻게 연기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더불어 그가 집착해 마지 않던 그의 저택. 그의 저택 앞에서 보이는 장관 또한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합니다. 어쨌거나저쨌거나! 무더운 여름을 개시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재미를 선사해주었습니다.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