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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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이 기적이라 말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 중 열일곱을 넘긴 이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기적은 항상 보통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보통의 삶을 살다 보통의 나이에 죽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런 것이 기적이라 믿어왔다. 내가 보기에 기적은 내 눈앞의 두 분,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였다.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였다. 한여름과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p47

제가 생각하기에도 저의 삶은 평범한 편입니다. 중간중간 힘든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저의 생활만으로도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다 계시고, 동생도 있고, 받을 수 있는 교육도 받았고, 제가 목표로 했던 것도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 저의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런 평범함이, 이런 보통의 삶이 부디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저의 모습에 엄마는 가끔 '너는 너무 모험정신이 없는 것 같다, 도전을 좀 해봐라' 타박을 하시곤 합니다. 딸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특별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는 그 때마다 마음 속으로 '엄마, 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이런 평범함 속에서 살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평범함에 감사할 수 있어서'라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어떤 강렬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어느 순간 '평범함'이, 최상이 아닌 '보통'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을 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아름이의 이야기에 끌렸던 건지도. 아름이는 열 일곱, 어린 나이지만 보통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름이의 부모님은 열 일곱에 아름이를 낳았고, 아름이는 현재 열 일곱이지만 부모님의 열 일곱 시절과 아름이의 열 일곱 시절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조로증. 한 시간이 한 달과 비례하고, 한 달이 일 년과 맞먹는 세월. 그 시간 속에서 아름이는 남보다 더 아파했고 그만큼 더 성숙해졌습니다.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두근두근 세상에 터져나온 그는, 다시 아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두근두근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쉽지 않은 소재입니다.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면서도 유치하게 눈물바람만 나게 해서도 안 되고, 억지 감동을 전달해서도, 지금의 삶의 소중함을 인위적으로 느끼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은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작가는 아름이의 힘든 현실을 담담하게, 때로는 소소한 재미를 섞어 객관적으로 묘사합니다. '불쌍해'라는 감정이 아닌, 우리 주위에 이런 삶도 있구나-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 '한아름'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죠. 나이 든 어린 영혼의 순수함과 성숙함에 매료되고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처럼 느껴지는 순간, 작품이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김애란 작가의 글은 처음 접했는데요,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어쩌면 단순한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소재의 무거움과 캐릭터의 매력에 비해 작가의 문장이 보여주는 깊이는 얕은 느낌입니다. 또 뭔가 더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지 못하고 표면만 건드린 것 같다는 기분도 들고요. 이것저것 생각할거리를 던져주고 소소한 감동도 있었지만, 뭔가가 모자란 기분입니다.

 

아름이의 입장도 입장이지만 아름이의 부모님들도 자꾸 눈에 밟힙니다. 미안해하는 아름이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며,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며 웃는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부모란 무엇일까, 새삼 생각해보게 돼요.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아이와 내가 부디 '평범함'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욕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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