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와우. 현실이라면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다섯 명의 여자와 사귀게 된 호시노 가즈히코군. 양다리도 아니고 다섯다리나 걸치고 있는 호시노군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생긴 돈 문제로 2주 뒤에는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 그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거구의 여성 마유미. 남의 고통을 즐기는 마유미는, 앞으로 남은 2주 동안 다섯 명의 여자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고 싶다는 호시노군과 함께 그녀들을 방문하죠. 단순히 그녀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다는 가학적인 즐거움을 위해서요.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 콤비를 맞이한 다섯 명의 여자들.

 

이별을 선언한 호시노군과 마유미 앞에서 그와 처음 만난 날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그것도 거짓말이었어?'를 내뱉고야 마는 그녀들은 나이도 직업도 환경도 다양합니다. 오랜 불륜에 시달리다 이제야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행복했다는 그녀1,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2, 도둑 흉내내기라는 괴상한 취미를 가진 그녀3, 이비인후과에서 처음 만난 숫자에 집착하는 그녀4, 유명 여배우인 그녀5 까지 모두 호시노군의 이별 선언 앞에서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키와 몸무게가 모두 180은 되어보이는 마유미까지 데리고 나타났으니 말이죠. 그렇게 이별을 선언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운명의 그 날은 다가오고, 호시노군은 지금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유미와 함께.

 

책소개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이 책은 소설을 독자들이 우편으로 받아보는 '우편소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작가에게 직접 편지를 받는다'는 형식은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죠. 총 6화로 구성된 작품 중 5화를 1화씩 독자에게 발송하고 나머지 1화를 합쳐 발행된 것이 이 작품. 과연 작가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전해받은 그 독자가 누구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그 작가가 이사카씨니까요! 던지는 이야기마다 매번 색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작가가 바로 이 이사카씨인데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영역을 넘나들며 재미를 선사합니다. 제가 단편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해요.

 

호시노군과 마유미, 그녀들과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캐릭터의 힘이 큽니다. 마유미라는 존재는 아마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거에요. 엄청난 거구이면서도 날렵하고, 늘 사전을 들고 다니며 자신의 사전에는 동정이라느니, 배려라느니 하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직접 보여주는 괴상한 여자입니다. 그녀들이 이별 앞에서 상처받는 모습을 즐기며 그 상처를 더 후비는 데 한 몫 하기도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굉장한 배려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정의에 불탄다기보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에게 주먹과 거친 입담으로 대응하는 마유미의 과거가 정말 궁금했지만, 그녀에 관한 단서는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듯.

 

호시노군은 이제 버스를 탑니다. 마유미가 평소에는 보여주지도 않던 동정심을 발휘해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지만 미련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섬세한 이 남자, '남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면서 버스에 오릅니다. 호시노군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버스'의 정체는 뭘까요.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마유미의 행동에 따스한 여운을 남겨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바이바이 블랙버드'는 노래 제목으로 '너와 헤어져 이제부터 행복해진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호시노군은 마유미와 헤어져 행복해질까요, 불행해질까요. 아니, 헤어지기는 할까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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