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제2탄입니다. 4탄인 [다크]가 먼저 출간되었었는데 예전에 기리노 나쓰오의 책을 한 권 읽었다가 또 몸이 아파진 저로서는 1탄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과감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다크]의 명성도 자자하여 차마 읽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큰마음 먹고 읽은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의외로 섬세하고 악의 강도(?)가 약한 데다 일종의 서정성마저 (아무래도 비의 영향인 듯) 느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표지의 매력도도 한몫 했지만요. 혹시 저처럼 악의가 짙게 묻어나는 작품을 읽은 후에 후유증으로 몸이 아파온다거나 악몽을 꾸는 분들이 계신다면 아직까지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1탄과 2탄은 괜찮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2탄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의 표지는 쪼콤 당황스러울 정도로 발랄하지만 책 속 내용은 그다지 발랄하지 않습니다. 표지에 집중하지 않고 '제목'에 집중하시면 될 것 같아요.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이라니, 얼마나 끔찍하고 서러운 밤일까요. 그런 밤에 눈물을 흘렸을 한 명의 AV 여배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무라노 미로. 시크하고 쿨하지만 누구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이 여인은 조금 찜찜한 기분으로 사건을 맡게 됩니다. AV 제작 회사와의 갈등, 잔인한 협박, 그리고 늘 그렇듯 찾아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허덕이면서도 진실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죠. 그 끝이 아무리 무섭고 안타깝다고 해도 말이에요.

 

이 이야기는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우리 주위에는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거라 믿고 싶은 마음을 마구마구 파헤쳐버리죠. 젊다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고 모든 것이 통용될 것이라 믿는 무서운 아이들과 타인의 인생따위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고 믿는 어른들 속에서,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절친한 사람들의 악의입니다. 그 존재가 가장 신성시 되어야 할 관계에 있는 '부모'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일까요. 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그리고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AV 여배우의 상처에 살짝 마음이 긁히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탐정일이 참 멋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요즘에서야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알 필요가 없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잔인과 언행, 그 어둠 속에 한 번 발을 담그면 무라노 미로처럼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걸까요. 타인에게 곁을 내주지 않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극한의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쓰다듬어 줄 한 명의 연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떠올리면 계속해서 '비'가 생각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한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은 그런 날의 차가운 비요. 마음을 허락한 상대에게 자꾸 상처를 받으며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그녀가 누군가와 행복해지는 날을 기리노 여사가 만들어줄 지 궁금하네요.

 

사건 자체와 전개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하지만, 제 생각에 결말은 조금 부족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저런 단서와 사건들을 마구 벌려놓았다가 갑자기 한 번에 모든 것이 매듭지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랄까요. 공포와 긴장감이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가 김이 빠져버린 느낌같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2탄보다 1탄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더 매력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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