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 팩션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늘 있어왔던 성경 파헤치기, 혹은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있는 수많은 미스터리들에 대해 얼토당토 않은 근거를 내세우며, 마치 그것이 정말 놀랍다는 듯 서술되는 이야기들에 지쳤다고 할까. 평소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소재라 해도 소설로 읽기에는 늘 꺼려졌었고 그 책을 읽는다해도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미스터리 팩션을 한 권 만났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파리, 나폴레옹 또한 실각하고 왕정복고를 내세웠던 그 파리에서 루이 16세의 아들 루이 샤를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은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어린시절 그토록 좋아했던 만화 [베르샤유의 장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

 

어렸을 때는 [베르사유의 장미]에 빠져 살았다. 만화책도 소장했었고(그 만화책은 지금 어디로 가버렸을까;;) 영화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 하루종일 틀어놓곤 했었으니까. 그 때 나의 우상은 오스칼의 곁을 한결같이 지키던 앙드레였다. 앙드레가 총에 맞아 오스칼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마치 실존인물이 죽은 것처럼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내 눈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철없는 오스트리아 공주, 흥청망청 삶을 즐기는 한심한 프랑스 왕비였다. 지금이야 그것이 그녀의 전부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그녀의 찬란한 아들 루이 샤를. 이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 때 탕플 탑에 갇혀 혹독한 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은 루이 샤를이 실제로는 살아있었을 거라는 추측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실존인물인 외젠 프랑수아 비도크(1775~1857)를 형사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에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 찰스 디킨스 등에게 영감을 제공했으며 천재적인 범죄자이자 파리 범죄수사과를 창설한 경찰. 초대 과장직을 맡아 범죄자 적발에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탓에 파면된 인물. 대다수의 미스터리 팩션 작품이 과거의 일을 현대사람들이 문서와 유적을 근거로 해결하는 구성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 시대 사람을 내세워 현실감과 생생함을 제공한다. 비도크는 범죄자이기는 했지만 명석한 두뇌도 갖춘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카르팡티에 박사.

 

사소한 것일지 모르나 나는 이 책의 소제목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모퉁이에서 구걸하던 거지'로 시작하여 '완결'로 끝나는 소제목들 중에는 '징을 박은 부츠에 생긴 일, 위대한 사람이 극악한 폭력의 위협을 받는 곳, 여행이 위험스럽게 보이는 곳, 엑토르란 아이, 슬굴곡근이 다치기 쉬운 부위임을 확실히 알게 된 곳, 샤를로트가 키우던 닭에게 닥친 비참한 운명' 등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해학적으로 보이면서도 시적으로 다가오는 소제목들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목만큼 긴장을 자아낼 때도 있고 제목과는 달리 슬픔을 쏟아낼 때도 있다. 또한 중간중간에 보여지는 어떤 이의 일기도 좋았는데, 후에 사건의 실마리로 밝혀지는 이 기록에는 테르미도르, 프뤽티도르 등 공화력이 적혀 있어 어쩐지 그 때의 프랑스 냄새가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미스터리 팩션이라 살인사건도 벌어지고 결국 범인도 밝혀지지만 진실은 역시 손에 잡을 수 없었다. 그냥 내 작은(?) 소망으로는 이 책에 쓰여진대로 루이 샤를이 정말로 살아남았던 것이기를 빌어본다. 다른 미스터리 팩션과 구성은 비슷하지만 격동의 프랑스의 냄새, 이야기, 비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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