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중 하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그 어떤 잘못도 저지른 적이 없는 다른 이를, 단순히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배척하고 괴롭히게 되는 인간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이지메'라는 이름이 붙여져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향한 적개심? 누군가 한사람을 괴롭히면서 얻게 되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 단순한 쾌락?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이유를 든다고 해도 누군가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이지메'를 소재로 한 책은 읽고 싶기도 하고, 읽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일종의 의무감이 수반되어 있는데요, 어찌됐든 제가 있는 곳에서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은연 중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을 전제로, 혹시나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지메를 당한 학생은 물론 가해자의 입장에 선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을 생각해두지 않으면, 막상 일이 닥쳤을 때 패닉 상태가 되어버릴 것 같거든요. 항상 그런 각오로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곤 했지만 제 마음 속 대답은 늘 '모르겠다'입니다. 그런 현실이 부디 나의 세상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그 가해 학생들의 마음이란 것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으로 한가득이 되어 결국에는 '어째서 인간은 누군가를 괴롭혀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발전해버리고 말거든요. 후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이지메를 다룬 책에 등장하는 잔혹한 묘사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헤븐'이라는 아름다운 제목과 파란색의 산뜻한 표지와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암울하기 짝이 없어요. 급우들(그들을 친구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와 역시 여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그 아이' 고지마. 그들은 고지마의 쪽지를 시작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 속 상처를 나누고 의지하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려고 합니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듯 하지만. 제가 이 책을 덮고 떠올린 한 가지 감정은 '불쾌하다'였습니다. 급우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책을 읽다, 덮었다, 다시 읽기를 반복했죠. 하지만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나와 고지마를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더 불쾌했던 것은 상처를 나누는 그들의 '궤변'이(라 할까요) 었습니다.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그들의 마음에 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요. 특히 고지마의 경우에 말이죠.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이지메를 마치 성자의 고난처럼 받아들이는 고지마의 모습이 참 싫었습니다.

 

이지메는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죠. 그건 피해 학생에게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그래서 지금은 '잘못'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 가해 학생에게도 상처가 되는 일이에요. 만약 작가가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이지메의 폐해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면, 어째서 이지메가 옳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논리적인 이유와 문학작품으로서의 감성을 동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종국에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짐작은 가요. 하지만 이지메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거죠. 그런 장면은 오직 불쾌감과 혐오감만을 남길 뿐, 그 어떤 논리와 감성의 동조를 얻지 못해요.

 

유명인들의 자살로 헛헛한 요즘입니다. 생명은 점점 가벼운 것이 되고, 마음의 상처가 몸의 상처보다 더 심각해지는 사회가 되겠죠. 저도 아직은 답을 발견할 수 없고, 그 누구도 결코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때문에 그런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잔혹하고 서글픈 폭력의 묘사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희망과 교훈을 줄 수 있는 문학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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