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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화씨비가] 와 함께 찾아온 쑤퉁의 또다른 작품입니다. 그가 최초로 털어놓는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하는데, 으흠. [화씨비가]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성북지대에 네 명의 악동이 등장해요. 이미 학교에서는 쫓겨났고 동네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자살로 몰아간 홍치와 유부녀와 도망간 쉬더, 좀도둑 쩔룩이와 멋진 사나이가 되고 싶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탄장에서 횡사한 다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과 얽힌 여자들 또한 운명이 순탄치 않습니다. 강간을 당하고 자살한 메이치, 건달들에게 죽음을 당한 진홍, 유부녀 진란까지. 읽다보면 [화씨비가] 주인공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 반복되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지더라구요.
[화씨비가] 에서도 등장했던 참죽나무길에서 이야기는 펼쳐집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1970년대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 지 굳이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해하기가 한층 수월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사춘기는, 청춘은 힘들고 모진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한 가지는, 성장소설이라고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이 어째서 이리 암울한 과정과 결말을 맞을 수 밖에 없었나 하는 것입니다. 성장소설이라 하면, 제 머릿속에는 일단 고난과 위기를 겪었어도 그것을 뛰어넘어 찬란한 빛으로 향해가는 암시를 주어야 한다고 믿거든요. 어떤 일을 계기로 성장하기 위해서 고난이 필수라면 주어진 미래는 밝아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작가는 그런 면에서 전혀 자비롭지 못하다고 할까요. [화씨비가] 때도 그러더니, 암울한 현실을 그저 그려내기만 할 뿐 그것에 대해 밝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청춘들이 있다, 이런 사춘기를 보냈던 소년들이 있다라는 것을 그저, 보여줄 뿐입니다. 작가가 밝은 미래를 제시해주길 원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쑤퉁은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겠죠. 자신이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이상을 펼쳐보이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말에 어쩐지 끄덕끄덕 공감이 되는 것은 또 왜인지. 어린시절 보아왔던 서민들의 생활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다며 고난과 불행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은, 어쩌면 그들에 대한 작가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결코 맞이할 수 없는 밝은 세상을, 서민들의 진짜 현실과 비교하며 제시하는 것은 그래도 어쨌든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인생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되고 말테니까요.
지금까지 쑤퉁의 작품을 [측천무후], [화씨비가], [성북지대], 이렇게 세 권 읽었는데요, 저는 [측천무후]에서 보여준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절제된 중후함이라고 할지, 그런 분위기가 측천무후와 잘 어울렸거든요. 하지만 아직도 이 작가의 성향을 잘 모르겠습니다. 휴우. 다른 작품에서는 어떤 분위기를 보여줄 지 기대도 됐다가, 또 마음 아픈 비극을 보여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가, 그렇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