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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연금술
캐럴 맥클리어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을 즐겨읽는 독자라면, 고딕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잭 더 리퍼'. 1800년대 후반 영국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최소 다섯 명의 매춘부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이 살인마에 대한 소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일일히 제목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영화의 소재로 쓰인 것만도 (내 기억으로는) 두 편 정도 되고, 소설만도 여러 편 되는 것으로 안다. (아님 말고) 이미 어디서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겠지만 희대의 살인마가 검거되지 못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꼈던 듯도 하다. 그의 정체는 무엇이고, 무슨 이유로 그 많은 목숨들을 빼앗아야만 했는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 작품 또한 그를 소재로 색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누리지 못했던 시절. 그저 집에서 청소와 빨래나 하면서 남편을 잘 보필(?)하는 것만이 여성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 생각되던 시대에 그 누구보다 높은 긍지를 자랑하는 여기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넬리 블라이. 퓰리처가 인정한 전설의 기자로 알려진 그녀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잠입수사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신병원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환자로 위장한 그녀, 그 곳에서 평생 잊지못할 살인마와 마주한다. 는 허구라고 생각된다. 그녀가 유명한 탐사보도기자였다는 것, 퓰리처가 인정했다는 것, 쥘 베른과 약간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마 잭 더 리퍼와 대결을 벌였다는 것은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평가하시기를. 어쨌거나 요리조리 옮겨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살인마를 쫓아 역시 요리조리 다니던 넬리는, 소설가 쥘 베른, 세균학자인 루이 파스테르,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와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분위기가 알맞게 어두침침하고 오싹한 것이 역시 잭 더 리퍼를 소재로 삼은 책이라 하겠다.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등장과 그에 못지 않은 능력자 넬리 블라이의 등장 또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초반에는 이 작품이 넬리 블라이가 쓴 자서전 쯤 되는 줄 알았다. 중간중간 삽입된 그림들과 넬리 블라이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내용들 때문이었는데 그 시점은 작품 안에서 여러 번 전환된다. 시점의 전환은 상황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주의가 산만해지고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단점도 지닌다. 퍼즐이 맞춰지듯 다양한 시각들이 모여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면 더없이 즐거웠을 작품이었겠지만 이번 이야기에서는 단점 쪽이 좀 더 우세(?) 했던 것 같다.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던 꼼꼼한 서술은 감탄스러웠던만큼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많은 미스터리 팩션들이 역사와 추리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인 내용은 필요이상 길지 않게, 작품의 긴장감을 방해할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이든 책이든 동원해서 알아볼 텐데 그것을 굳이 작품 안에서 길게 나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스터리 소설이고 잭 더 리퍼만으로도 훌륭한 소재였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그나저나. 잭 더 리퍼의 정체는 대체 뭐였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