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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
왕예린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인류의 발명 중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자'입니다. 몸짓과 표정으로 시작된 의사소통이 그림과 문자를 거치면서 한층 정교해지고 뚜렷해졌죠. 문자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책을 읽는 일도, 글로 생각을 전달하는 바로 이 순간도 전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만약 문자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몸짓과 표정, 우어우어하는 소리만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을까요.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신비로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것에 겸손해지게 된다고 할까요.
사람들에게 지식의 희열과 표현의 자유를 선사해준 문자이지만, 이 문자 때문에 말 못할 고초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플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나 그 가해자로 고소를 당한 사람들, 원치않는 정보공개로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되는 우리 사회도 그렇죠.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멀리, 그리고 국경을 넘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문자옥(文字獄)이라 불렀다고 하는데요, 저는 '문자옥'을 듣고는 바로 진시황을 떠올렸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분서갱유'의 한 가운데에 바로 그 진시황이 있었으니까요. 이 책에서는 그 진시황 뿐만 아니라 '문자옥'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등장합니다.
서한 시대에 일어난 양운 사건은 중국 최초의 문자옥으로 손꼽히고, [삼국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인 조조도 문자옥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노나라의 공융과 최염은 모두 조조로 인해 화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해요. 그 외에도 송나라의 구양수, 북송 시인 이지의, 북송 주방언 등이 문자로 인해 해를 당한 사람들로 등장하는데, 잘 모르시겠죠? 헤헤. 중국 문학이나 역사에 심도있는 지식을 가진 분이 아니라면 아마 낯선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시대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것만도 벅찬 독자에게 책의 구성이 절대 친절하다고만은 할 수 없거든요.
각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달라도 이들의 사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의 생각이나 사상이 그들이 사는 세상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해를 입었다는 점이죠. 결단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도 말 한 마디로 반역죄가 추가되고, 글 한 자로 사형을 당하게 된 사람들. 교만함과 욕심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사상죄'를 적용하여 권력을 휘두르려 했던 지배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합니다. 언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문자의 힘은 말 그대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 문자를 어떻게 쓰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늘 고민해야 할 거에요. 주어진 자유 안에서 남에게 필요없는 상처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요. 중국 역사 속에서 문자옥을 당한 사람들의 사연을 읽다보니 문득, 우리나라의 문자옥도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