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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마음에 스산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가 이 작품집에 대한 감상의 모든 것이다. 어쩜 이리도 어둡고 공허하며 똥꼬발랄하지 못한 이야기 투성이일까. 내게 필요한 건 비록 안타깝고 어두워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은 '감성'이었는데. 곳곳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는 그 느낌 그대로인데 내 마음에 꼭 끼워맞춘 듯한 감성적인 작품들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찾지 않았을 18편의 단편집. 박민규였기에 찾았다. 그리고 박민규였기에, 괜한 오기가 생겨, 이리 끙끙대며 끝까지 다 읽어냈다.
사실 어떤 작가의 성향을 오직 한 작품만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주 범하게 되는 오류. 이 작가는 다른 작품도 분명 이런 느낌일 거야.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그래서 나는 이번 작품집에 만족하기로 했다. 비록 전부는 아니었으나 일부는, 내가 원한 감성이 들어있었으니까. 어쩌면 '너희가 뭐라고 하든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 식의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작품들에 은근 빠져들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 소개란에 단순히 소.설.가라는 세 글자만 깊이 박아놓은 작가에게 콧방귀를 퐁 끼어줄 권리는 가져보고 싶었던 걸까.
18편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늘 우리 곁을 쉬지 않고 따라다니는 삶, 그리고 그 의연한 삶을 채우고 있는 온갖 구체적인 생활들. 늙으면 가난한 것도 죄가 되고 막상 죽으려 하지만 쉬이 죽을 수 없고 어떻게 살아남았나 싶으면 이상한 사람 만나서 인생 망치고 그러다 이 지구는 뭘까 지구가 멸망하면 그 다음 세계에는 무엇이 존재하나를 고민해보고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과 싸우고 또 그러다 내 전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대체 무엇이었길래 지금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고 또...계속 그러다보면 책이 끝나 있는 것이다. 현실, 환상, 그리고 그 언저리 어딘가쯤에서 의식은 끊임없이 배회했다 다시 돌아온다.
마음이 스산한 계절에, 또 왠지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일까, 모든 것을 껄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담대함일까. 이 작품집 앞에서 생각한 것은 그저 '단순함'이었다. 닥치는대로, 주어지는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 생각이란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생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으니까.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쓰고 싶은대로 썼으니까, 나는 읽고 싶은대로 읽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