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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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그려진 눈동자를 밤에 보고 있으려니 오싹합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다잉 아이라고 표지에 눈동자를 그려넣다니! 요런요런 촌스러운!' 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지는 없을 듯 해요. 게다가 '잊지마, 당신이 나를 죽였다는 사실을'이라는 문구는 마치 한 편의 호러영화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일까요, 호러소설일까요? 정답은 둘 다 입니다. 개인적으로 호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과연 얼마나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간 때우기용으로는 괜찮은 작품인 듯 합니다.
 
초반의 교통사고 장면을 묘사한 장면이 가장 무서운 부분이기도 해요. 한밤,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기시나카 미나에의 몸이 자동차에 치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부분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만 상상해버리고 말았어요. 죽기 직전의 단 몇 초가 그렇게 천천히,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정말 끔찍할 거에요. 초반부터 강렬한 장면을 만났더니 그 뒤의 호러가 오히려 묻히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는 듯 합니다. 이 장면을 무섭다고 생각하게 된 건 제가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탓도 있어요. 언제 어디서 찾아올 지 모르는 사고. 나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이 장면에 겹쳐져서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스포가 있을수도 =ㅅ=;;;-
공포를 조장하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흥미롭게 읽기는 했지만 인물설정에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기시나카 미나에의 영혼에 빙의된 것으로 보이는 미도리가, 사고의 원인제공자라 생각한 주인공 아메무라 신스케를 계속 유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지어 그의 아이를 낳겠다는 말도 하는데, 미도리의 몸 안에 정말 기시나카 미나에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사랑하는 남편(기시나카 레이지) 과 오래 함께하고 싶을 것 같거든요. 아메무라 신스케를 유혹한 후 나중에 어떻게 할 심산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의미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자꾸 나와서 곤란했습니다. 이 미도리의 정체가 참 아리송해요. 정말 빙의된 건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한 건 지. 뭔가 애매모호한 것이 엉터리로 만들어진 일본 공포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가장 무섭지만 가장 인상깊은 장면인 초반. 기시나카 미나에가 죽어가면서 사고를 낸 운전자인 미도리를 강렬한 원한을 담아 쳐다보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원혼이 빙의된다는 설정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김기덕 감독의 영화인데요, 기억이 흐릿해서 맞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죽어가면서 곁에 있던 나비를 쳐다본 덕분에 그 곳으로 영혼이 옮겨간 듯한 장면이 있었거든요. 상황과 내용은 영 다르지만 한쪽은 몽환적으로, 한쪽은 공포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음. 그러고보니 그런 설정을 한 영화가 또 한 편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나저나 앞으로 운전할 때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운전자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데 걸러지지 않은 잔인함과 분노라면 정말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심하고 또 조심하기.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죄책감을 가지기. 이것이 이 작품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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