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4
제인 오스틴 지음, 원영선.전신화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정신없던 명절도 어느새 끝이 보인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고. 끼니 때는 왜 그리도 빨리 찾아오는 지 시대가 아무리 바뀌었다고는 해도 여인네들은 부엌에서 허리 펴고 쉴 시간이 얼마 안 되었을 거다. 어렸을 때는 그리도 좋더니, 어른이 된 후에는 명절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한국 여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 여인이면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 이렇게 말을 꺼내놓고 보니 이번 비로 피해를 당한 분들에게는 내가 투정을 부리는 정도로만 여겨질 것 같아 민망하다. 빨리 침수피해가 복구되기를. 

잠시 다른 길로 벗어났지만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예전에 학교 졸업하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에 그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데 '결혼'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건만 (뭐 거의 되어가고는 있지만) 남자친구는 있느냐, 빨리 만나야 되지 않겠느냐,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상대가 있으면 얼른 가라 등등 나의 명절은 결혼에 관한 온갖 이야기로 가득 메워졌던 것이다. 주변에서 자꾸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니 부모님도 마음도 더욱 조급해지신 듯, 친척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름달을 볼 때마다 '우리딸, 빨리 결혼하게 해주세요오'를 연신 외치느라 바쁘시다. 

'내가 결혼하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를 소심하게 읊조리면서, 그런 와중에 제인 오스틴의 [설득]을 읽고 있자니 예나 지금이나 '결혼'이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건 부정할 수 없겠다.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에는 통속소설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결혼에 대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시대상, 남녀가 밀고 당기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어디서 본 것 같은 설정임에도 읽다보면 헤어나올 수없는 매력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설득'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 연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앤 엘리엇과 웬트워스 대령. 결혼을 약속했던 그들의 관계는 앤이 그녀가 존경하는 레이디 러셀의 조언에 흔들리면서 깨어지고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시작된다. 이야기는 철저히 앤의 관점 (정확히는 작가의 관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웬트워스 대령의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답답하기는 하다. 게다가 요즘처럼 톡톡튀는 남녀관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주위환경을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관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밀고 당기기식의 사랑이 보이지도 않다. 하지만 차근차근 전개되어가는 과정과,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분위기의 사실적 전달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남녀간의 사랑이나 주위 사람들의 참견과 설득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가장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다. 오늘날에는 결혼정보업체로 대변되는 '결혼시장'이, 먼 옛날에는 사교계에서 행해졌을 수도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가졌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변치않는 마음, 신뢰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그런 변하지 않는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고전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 때문이 아닐까. [오만과 편견] 과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이고,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과도 그다지 다른 분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설득]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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