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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유혹 -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김진아 외 글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여름만큼 여행서를 많이 읽는 계절도 없는 것 같다. 한정되어 있지만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기쁨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1년 동안의 바람과 소망이 꼭꼭 눌러담아져 있다가, 이 계절 불꽃처럼 폭발한다. 산과 바다,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많은 사람들. 그 인파 속에 섞일 수 있어서 올해 여름은 나도 행복했다. 지금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하기만 한 그 때. 일상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씩 그 때의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그런 허한 마음을, 다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 한 권의 여행서가 아닐까. 내가 찾아갔던 곳이 나오면 마냥 즐거워지고 새로운 곳이 등장하면 다시 마음이 설렌다.
이 책은 열혈 여행자 12인의 여행 추억집이다. 보통의 여행서가 한 사람의 저자, 한 곳의 풍경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그들 열혈 여행자 12인이 그 동안 찾아갔던 여기 저기를 소개한다. 열혈 여행자 12인 중에는 방송 작가로 살았던 사람도 있고, 대기업의 평범한 샐러리맨도 있었다. 북칼럼니스트도 있고 저술업자도 있으며 동아일보 기자였던 사람도 있고 잡지 편집장을 했던 사람도 있다. 익숙한 가수의 이름도 보인다. 그들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 만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어느 날, '덜컥'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신들의 손에 쥐어진 것을 용감하게 내팽개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들은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닌다. 인도, 베트남, 러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인도 히말라야, 헝가리,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체코, 영국, 카파도키아, 캄보디아. 그 중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도시들이 허다하다. 그 곳에서 누군가는 길을 잃기도 하고 친절한 현지인을 만나 음식을 대접받기도 하면서 점점 그 곳에 동화되어 간다.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 12인 중 한 명이 태국 수코타이에 갔을 때다. 수코타이에 홍수가 났던 시기에 그 곳을 찾은 여행자는 사람들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버스를 기다리며 파도타기를 하는 소녀들을 보게 된다. 심지어 튜브를 타고 이리저리 '마실'을 다니는 아저씨도 보였단다. 올여름 비가 새는 집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다. 그런 여유로움을, 생활의 단면에 헛점이 있어도 대범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을 나도 간직하고 싶다.
한 여행자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들쑥날쑥 하다보니 초반에는 집중력이 약간 떨어졌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마치 필름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여행을 다녀와도 그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고 단편들만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쓰여진 책. 찰나의 기억들이라 그들에게는 더 소중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