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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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는 순간 '히엑'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그런 책입니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범죄수사를 다루는 미드를 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잘린 머리' 라는 단어를 눈으로 볼 일이 얼마 없을 거에요. 실제로 제 방에 있는 추리소설의 제목을 본 동생이 누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 책만 읽냐며 타박을 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는 조금 조심스러워졌는데요, 이 책도 제목이나 표지가 워낙 자극적이라 북커버를 씌워서 읽었답니다. 하지만 정도를 넘는 잔혹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편은 아닌 데다가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재미가 있어요. 뭐, 요즘 귀막고 눈감고 봐야 할 정도의 한국영화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새발의 피라고 할까나요. 

이 책은 책이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 또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책 속의 책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거죠.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지은 사람은 미쓰다 신조, 책 속의 책을 지은 사람은 히메노모리 묘겐(다카야시키 다에코) 입니다. 그녀의 남편인 다카야시키 하지메가 주재소 순사로 근무할 때 일어난 불가사의한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이야기랍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히메카미 촌으로 마을의 대지주인 히가미 가가 대대로 이 땅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오쿠비'라는 존재의 지벌을 피하기 위해 삼삼야, 십삼야, 이십삼야 등의 밤에 의식을 행해야 했던 히가미 가에서 후계인 조주로가 십삼야 의식을 행하던 밤, 불가사의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모든 일의 시작이자 앞으로 불러올 엄청난 참극의 서막이 된 사건이죠. 이 사건의 과정을 히메노모리 묘겐은 남편인 다카야시키 하지메와 히가미 가에서 조주로의 몸종으로 일하던 요키타카의 눈을 빌어 서술해가는 겁니다. 

전쟁 전과 전쟁 후 벌어진 이 사건들 속에는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신, 뿌리깊은 남존여비 사상, 가문이라는 요소가 버무려져 있습니다. 신의 지벌이라는 미명 하에 대지주 가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남존여비는 그것이야말로 '벌'이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오로지 가문을 위해 개인의 인성이 무시되고 깊숙한 비밀을 간직한 채 유지되어가는 가문에서, 흡사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으니까요. 거기에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을 해치고 그것을 숨기려고만 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더해지는 바람에, 책 속에서 꾸물꾸물, 어둠의 기운이 마구 흘러나왔답니다. 목이 잘린 귀신이나 그 신의 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마치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차분한 말투와 고풍스런 분위기에 마지막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추리소설에서 여러 번 쓰인 잘린 머리 트릭은 동서양을 합쳐놓은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더구나 이 미쓰다 신조 작가의 뒷통수치기가 작품의 후반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니, 독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정말 즐거운 독서시간이었답니다. 작가로서는 최대한 친절하게 문장 곳곳에 힌트를 숨겨두긴 했지만 저는 눈치채지 못하는 바람에 여지없이 뒷통수치기를 당해버렸습니다. 결말을 보고도 '이게 끝이야? 뭐지?' 하며 한참을 책을 뒤적거렸습니다. 

그런데요, 권영주님이 번역하신 책들을 꽤 봤는데, 이번 책은 살짝 의심이 들었습니다. 문장이 조금 매끄럽지가 않고 뭔가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책을 읽기 전에 옮긴이의 이름을 확인했음에도, 책을 읽다가 '누구지?'라는 생각에 책의 앞면을 다시 살펴볼 정도였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저에게 '네가 번역해!'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뭔가 이번 책은 아리송합니다.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표지가 인상적인 책입니다. 표지를 펼쳐 보면 숨어있던 그림이 나타나고 다른 방향으로 접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게 되어 있어요. 초판본에만 요렇게 되어 있을 듯 합니다. 만약 [산마처럼 비웃는 것], [흉조처럼 피하는 것] 이 출판된다면 초판본은 요런 형태를 계속 유지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흐흐. 으스스한 표지를 곁에 두시면서 머리 없는 시체를 분류하는 11가지 트릭이 뭔지 읽다보면 이 여름이 다 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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