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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스릴러 소설이자 제프리 디버의 작품이다.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건, 당연! 한 편의 숨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하는 스릴러 소설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아니려나. 겨울에도 스릴러 소설은 읽을 수 있지만 여름만 되면 유독 끌리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더위를 잊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일 것이다. 겨울은 아늑한 따스함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여름은 에어콘을 풀가동시키지 않는 이상 완전히 더위를 잊는 일이 불가능하니까. 사실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지만 그의 작품은 못해도 중간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믿음이 작용해버린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도 사랑스러워서 팔운동이 필요한 무게라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을 손에 쥐면 두 세 시간은 주위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캐트린 댄스!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불리는 그녀는 상대의 몸짓과 표정을 분석해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 콤비로 유명한 링컨 라임 시리즈에도 살짝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링컨 라임 역시 영화 <본콜렉터> 로만 접한 터라 매우 신선했다. 침착하고 섬세하게 수사를 해 나가는 그녀가 일가족을 살해한 다니엘 펠의 탈옥 사건과 만났다. 잔인하고 사람을 조종하는 것을 즐기는 펠. 그는 당시 컬트 패밀리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었고 일명 가족이라 불리는 사람들로부터 광적인 믿음을 얻어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외부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면서 사건은 다시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그리고 캐트린 댄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일가족 살인사건으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잠자는 인형으로 불리는 소녀와 만난다.
사건은 숨막히게 전개된다. 캐트린 댄스의 동료의 부상과 죽음, 다니엘 펠의 끊임없는 살인, 한 때 그를 열렬히 추종했던 세 여인의 재회, 현재 그와 함께 움직이며 그를 추앙하는 또 다른 여인, 사건의 단서가 되어 줄 잠자는 인형의 출현까지 곳곳에 흥미를 끌만한 소재들이 숨어 있다. 게다가 어쩐지 꺼림찍한 느낌을 가지게 한 또 다른 사람의 어긋난 살인까지 잠시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특히 캐트린 댄스가 상대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마음을 간파하는 부분들은 이 소설 안에서 가장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일견 단순한 스릴러 소설 같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해체'라는 비극이 숨어 있다. 가정에서 더 이상 따스함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마저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는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결속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사건에 관계되었다는 이유로 가족과 연락을 하지 않고 사는 펠의 추종자들, 정서가 불안했던 부모님으로 인해 가족에 대해 어긋난 이미지를 얻게 된 펠. 비록 바깥에서는 범죄집단으로 보일지라도 그들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가족 안에서조차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 가여운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살얼음판처럼 변해가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해 가슴 한 쪽이 서늘해졌다. 그 안에서 캐트린 댄스의 어린 아들이 엄마의 남자친구를 경계하는 모습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약간 허술하다는 점, 그리고 성적인 표현이 많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다니엘 펠의 변태적인 모습을 묘사하려 한 의도였는 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참 쓸 데 없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증거를 하나하나 분석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파악해 상황에 따라 대응해 가는 것도 즐거웠다. 링컨 라임보다는 캐트린 댄스의 수사법이 더 매력적인 것 같기도 하다. [잠자는 인형]의 후속편인 [노변의 십자가] 가 뒤의 인터뷰 부분에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속편도 출간될 듯 한데, 그 때는 또 어떤 표정과 몸짓을 단서 삼아 사건을 해결할 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