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110층 건물에서 반대편 건물에 로프를 연결해 그 위에서 걸어다닌 사나이. 때로는 폴짝 뛰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곡예 아닌 곡예를 부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남자.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그 밑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살짝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에 겨웠을 것이라 예상한다. 저 남자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다치면 어쩌나, 아니, 저 위에 있는 것이 정말 사람이기는 한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 책은 110층의 건물 사이를 로프 하나에 의지해 걸어다닌 필리프 프티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예술적 범죄'가 일어난 그 시각 그 아래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또 하나의 이야기 세상을 창조해냈는데, 사실 이 책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 지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이야기와 전개방식이 일견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문체와 서술방식이 조금 독특하기 때문이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 속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감정의 기복조차 쉽게 느껴지지 않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초반에는 '이 책 대체 뭘까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첫 번째 이야기는 읽어내기가 조금 힘이 들었는데 그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수록 작가가 만들어낸 이 독특한 분위기에 휩쓸리게 된다. 은근 중독성이 있는 문체와 내용이랄까.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삶이 외줄타기를 한 남자로부터 영향을 받는 특별한 시간. 그 시간들 중 가장 내 마음을 울린 것은 베트남전에서 아들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모임이었다. 모임을 위해 클레어 부인의 집에 온 마샤는 외줄타기를 하는 남자를 자신의 아이가 인사를 하러 왔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냐면, 어찌어찌 그곳에 머물렀고, 또 안전하게 내려왔다면, 그건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멈춰 서서 발길을 돌려 지하철을 타고 이리로 올라온 거예요. 두 번 다시 눈길도 돌리지 않고 말이에요...만약 살아있다면 마이크 주니어일 리 없으니까요'

아들들을 잃은 어머니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 동생의 죽음을 전해듣는 형, 딸의 죽음을 알게 된 어머니, 교통사고의 가해자인 한 여인,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은 판사 등 그들의 하루 혹은 며칠은 '그 남자'를 통해 다시 맞물려 돌아간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마치 지구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인생의 교차, 인물의 교차를 통해 삶의 아이러니함과 신비함을 느낀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 어느 한 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우연한 만남이 우리의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기대감도 생긴다. 이 책은 우리들의 삶에 대한 찬사이자 운명의 신비함에 대한 노래이며 인생에 대해 경견함을 느끼게 하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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