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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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인가 여행 에세이를 잘 읽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부러워만 하며 쉽게 떠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고, 그들의 경험이 결코 내 경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 책을 덮고 또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저 가고 싶다는 바람만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게 될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대리만족. 한 때는 중요하게 생각한 책읽기의 목적이었으나, 더 이상 대리만족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 그럼에도 힘내어 한 발을 내딛을 수 없는 내가 지키고자 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떠나기로 했고, 그 곳 또한 일본의 오사카였기 때문에 이 책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그 어떤 곳보다도 항상 갈망했던 곳. 그 곳에서 저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 지 궁금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벚꽃이 흩날리는 듯한 예쁜 표지만큼이나 책의 내용도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를 기대하면서. 일본에서 '글로벌 웨더자키'라는 타이틀로 현지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는 그녀의 일본에 대한 반가움과 그리움, 여행을 떠나 어쩌면 내가 묵게 될지도 모를 작고 소박한 방의 모습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관광 안내 책자 같은 에세이가 아니라 낡았지만 깊고 풍부한 맛이 있는 삶의 그대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드러낸 것도. '여기 내가 가보려고 생각한 곳인데, 앗, 여기 나도 가봐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여정을 따라갔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 수록 나의 기대는 무너지고 만다. <빈티지 감성 여행 에세이, 일본>이라는 부제가 나타내는 것처럼 이 책은 감성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그 감성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그녀의 잃어버린 사랑과 삶에 대한 독백이었다. 물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삶에 대한 생각,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추억을 얼마든지 곱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칭 '여행 에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다면 자신을 중심에 둘 것이 아니라 일본을 중심에 놓고 자신은 주변으로 밀어두었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다 생각나면 일본의 풍경과 특징을 묘사하는 듯한 분위기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책을 읽다보면 '이이는 이별하고 충동적으로 일본에 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지나간 사랑에 대한 독백이 수없이 등장한다. 낡은 것에 대한 그리움조차 자신의 끝난 사랑에 빗대어 묘사할 정도다. 감성은 중요하다. 나도 감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세월이 흘러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날카로운 감성만큼은 잃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친 감성은 듣는 이를 지치게 만든다. 꿈과 사랑, 홀로 여행하는 순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꿈과 지나간 사랑, 그리고 뻔한 자기연민은 입 밖에 내어 이야기하면 할 수록 시시해진다는 것을, 이이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많은 책들이 얼마나 힘들게 세상 빛을 보고 있는 지 안다. 그러니 그럴수록 '이 정도의 에세이는 나도 쓰겠다. 그냥 일본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상황에 맞게 연결시키면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은 들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나이를 먹었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슴 속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고해성사를 하는 듯한 예민한 노력이 필요했다던 그녀라기에, 그녀의 책에 쉽게 칭찬표를 던지지 못하는 내가 되려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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