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
스탕달 지음, 이규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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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포근하고 반짝반짝 햇빛 냄새가 난다. 올해 들어 가장 포근하다는 오늘, 그리고 어제. 산책하고 줄넘기도 뛰어보고 여기 저기에서 마음껏 바깥공기를 쐬고 들어온 다음에도, 거실에 앉아 책을 읽는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적과 흑], 이 책의 흑백표지처럼 기분은 가라앉았고 1권에서 엉성하게 모여있던 꽃잎 배경이 2권에서 산산히 흩어져버린 것에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봄이 오려는 기운에 몸은 점차 꿈틀거리지만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마음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의무와 사랑에 빠져 고뇌하던 쥘리앵의 우울이, 오늘의 햇빛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흑과 반대되는 색이라면 으레 떠올리기 쉬운 백. 어째서 '백과 흑'이거나 '흑과 백'이 아닌 '적과 흑'인 것인가, 로 오랫동안 궁금했던 작품, 스탕달의 [적과 흑]이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왕정이 복고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계급은 낮지만 야망을 가졌던 청년 쥘리앵의 사랑과 삶을 그렸다. 총명하고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쥘리앵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가업에는 관심이 없고 책과 출세에 관심이 많은 청년이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마을 베리에르의 시장 레날이 그에게 가정교사 자리를 제안하는데, 그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쥘리앵은 자신이 몰랐던 세계, 그러나 그가 꿈꾸던 세계로 첫 발을 들여놓게 된다. 

언제 또 나폴레옹같은 사람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늘 두려워하는 상류사회. 낮은 계급으로 비롯된 열등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자존심과 고집으로 출세의 길을 모색하던 쥘리앵은, 뛰어난 라틴어 실력과 암기력, 준수한 그의 용모에 빠진 레날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그녀와의 관계가 폭로될 위기에 처하고 브장송을 거쳐 대도시 파리에 진출하게 된 쥘리앵. 그 곳에서 만난 마틸드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녀와의 사랑 또한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아간다. 

쥘리앵을 무시하면서도 같은 마을의 라이벌에게 그를 빼앗길까 두려워 내보내지 못하는 레날, 줄곧 그에 대한 감정을 부인하다가 하녀 엘리자가 쥘리앵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순식간에 마음을 열어버린 레날 부인, 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그들과 같은 자리에 올라서고자 했던 쥘리앵의 야망은, 다른 듯 보이나 같은 모습들이다. 자신만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규정지어지는 존재의 정의. 쥘리앵은 그런 생활들을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남들'이 내게 무슨 상관이오? 그 '남들'과의 관계는 머지않아 갑자기 끊어져버릴 거요. 제발 더이상 그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지 마요. 판사와 변호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해요...그렇지만 삶의 종말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안 뒤에야 인생을 즐기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2권, p399 


감옥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는 쥘리앵.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낀 뒤에야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즐기는 그를 우리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1800년대 프랑스의 사회와 문화, 한 인간의 삶과 사랑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 지 표현한 이 작품에서 '적'과 '흑'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해설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잘 언급이 되지 않아 내내 궁금했던 이 색들은 통설적으로 군복의 붉은색과 승복의 검은색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주인공 쥘리앵이 열망했던 두 개의 직업, 군인과 사제를 뜻한다고 볼 수도 있고, 좀 더 넓은 의미로는 나폴레옹으로 대변되는 붉은 군복의 자유주의자와 성직자들로 대변되는 검은 승복의 복고주의자를 뜻한다고도 한다. 

사랑에 빠져 조바심을 내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의 심리, 한 시대의 양상을 그려내는 부분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만, 번역 면에서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쉽지 않은 작품일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역시 쉽지 않은 작품이었고,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게 다가오는 문장들. 감동을 느낄 법한 부분이 아닌데도 감동을 느꼈다고 표현되는 부분처럼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문장들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 더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정서가 다른 건지, 단어와 문장의 표기가 본래 그런 것인지. 한 번 더 찬찬히 곱씹으며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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