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19분이면, 당신은 앞뜰의 잔디를 깎고, 머리를 염색하고, 하키 경기 3분의 1을 관람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스콘을 굽거나 치과에서 이를 하나 넣거나 다섯 식구의 빨래를 갤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세상을 멈추게 하거나, 세상에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

 19분이면, 당신은 복수를 당할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알맞게 말 그대로 뼛속까지 시려오는 듯 차가운, 그렇지만 가슴 속 답답한 기운을 한 번에 가져가주는 상쾌한 바람이다. 아무리 상쾌하다 해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일만 아니었다면 오래 맞고 싶지 않은 바람이었지만 오늘따라 햇살은 왜 그리 따뜻하고 찬란한지.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물들이 모두 반짝이는 듯 해서 나는 눈을 조금 찌푸려야 했지만 순간 나 자신까지 반짝이는 듯한 착각에 눈부심이야 조금 참아보기로 한다. 

장소는 한 번 지하철을 놓치면 10여분은 기다려야 하는 중앙선의 어느 역.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에 도착한 후 19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19분. 19분 전에 나는 역에 도착했고, 19분 동안 여기저기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의 그 19분은 매우 평화로웠다.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을, 학교 다닐 때도 해본 적 없는 수업 거부를 하고 나온 참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활기찬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몰래 빠져나오기를 잘 했다 싶었다. 나의 인생에서 19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또 조용히 흘러갔지만 누군가에게는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리라. 

2007년 3월 6일 10시, 뉴햄프셔 주의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는 피터 호턴. 호리호리한 몸에 안경을 쓰고 하얀 피부를 가진, 17세 소년. 그는 자동차 한 대를 폭파시키고 학교의 카페테리아, 교실, 화장실, 계단, 복도, 그리고 경찰에게 붙잡힌 라커룸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마주쳤던 사람을 모두 공격했고 시작된 지 19분만에야 사건은 끝이 났다. 그러나 매슈 로이스턴을 포함한 10명의 사망자와 아름다운 얼굴을 잃게 된 헤일리 위버를 비롯한 많은 수의 부상자, 신체적인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남은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와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 학생들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은 사건은, 피터 호턴에게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 지를 밝혀내며 다시 시작된다.

   모두들 내가 그 애들의 인생을 망쳤다고 하지만, 내 인생이 망가지고 있을 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요. -1권, p232
'맞춤형 아기'라는 다소 충격적인 설정의 작품 [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로 많은 감동과 아픔을 전해주었던 조디 피콜트가 이제는 '왕따 문제'와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소외당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남은 평생 커다란 상처를 남길 사건의 표면적인 부분이 아니라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희생자들 외에 가해자 또한 상처받고 있지 않았는지를 깊이있는 시각으로 섬세하게 다루었다. 가해자 또한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음을, 홀로 고통받은 시간에 누구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이 작품을 읽다보면 2007년 4월 버지니아 주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승희가 만들어낸 참담함과 아픔이 아니라 그의 무덤가에 누군가가 가져다두었던 편지와 꽃다발들이. 

작가는 사건이 일어나면 으레 피해자들에게만 국한되기 쉬운 초점을 이 작품에서는 가해자인 피터에게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 단 한 명의 친구라 부를 수 있었던 조지 커미어, 조지의 엄마인 알렉스의 시점을 넘나들며 각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피터가 어떤 아들이었는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듣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서 책을 읽어내려가기가 무서워질 정도였다. 아이라서, 순진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친구를 놀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그 순진함만큼이나 같은 비율의 잔인함도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단지...네가 우리와는 다른 애들을 대하는 방식이 싫은 것뿐이야, 알겠어? 낙오자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애들을 괴롭혀도 되는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아니, 그렇지 않아. 그런 애들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1권, p376
'인기있고 싶다'는 점에서는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구는 당연하다. 때문에 늘 괴롭힘과 놀림을 당하는 피터 곁을 떠나 인기있는 아이들과 어울리려는 조지의 행동을 아무도 비난할 수는 없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 인기는 사막에서의 물 한모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니까.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다름'을 '틀리다'로 판단하고 배척해버리는 판단의 부족함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왕따'는 민감한 문제다. 정신적인 학교폭력이며, 따돌림을 당한 학생들이 자살하기도 하는 등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왕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기란 어렵고도 어렵다. 하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에 어설프게 어른이 끼어들어 더한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얼버무림,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늘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말들,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는 그럴듯한 충고와 핑계들이 어쩌면 상처받은 아이를 더 외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일들은 인생이라는 웅대한 게획에서 퍼즐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2권, p86) 는 걸 깨닫는 때는 현재가 아니라 먼 훗날이 될 것이므로. 문제의 심각성은 알고 있으면서도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의 인생을 망가뜨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서 누군가는 영원히 걸을 수 없고 누군가는 제대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으며 또 누군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점심을 먹거나 그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부모는 자살을 하기도 하고 피페해진 삶 속에서 한 조각의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말이 듣기 싫거든, 적어도 자신을 세상 속으로 보내 준 자신의 부모 또한 영원히 자식을 잃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통의 순간을 그들이 함께 해주지는 못했어도 말이다. 그것 또한 부족하거든 자신 또한 스스로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도 기억해주기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 한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거야. -2권, p358
조디 피콜트는 '회색지대'를 그리는 작가라는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든다. [쌍둥이별]에서도 그렇지만 [19분]에서도 세상을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가해자는 없고 오직 상처받은 사람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에만 의존한 결말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쉼없이 달려운 진실의 마라톤 끝에서 그녀가 선택한 결말은 덤덤하고 현실적이다. 시사성 있는 소재, 섬세한 표현력을 잃지 말고 멋진 작품으로 다시 찾아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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