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가족'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가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머금으면 나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내다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들'. 분명 우리나라 작가의 인터뷰 중 하나였는데 누가 말한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 사람이 저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은 내다버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가족=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 사람은 저렇게 모질게 말할 수 없었겠지.

나에게 가족은 처음으로 나의 존재를 명명해주었던 사람들이자, 사랑과 미움, 원망과 애정, 실망과 친밀함 등 온갖 감정들을 나누고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라는, '가족이 뭐냐!'라는 말들로 모든 것이 통용될 수 있는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그 '가족이니까'를 외치면서 타인에게 원하는 것보다 더한 사랑과 관심, 관용과 배려를 요구하게 되는 관계. 그 요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놈의 집구석, 징글징글해. 혼자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지만 어쩌면, 역시 가족 없이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저 말을 아무 느낌 없이, 간단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만해도 징글징글한 이놈의 집구석, 여기에도 있다. 아버지는 돈 잘 버는 무역업체 사장,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재혼했으나 곧 또다시 이혼, 누나는 어릴 적 받은 상처로 제대로 된 생활을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상태이며 멀쩡해 보이는 남동생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그리고 현재 아버지와 누나와 남동생은, 화교인 새어머니와 의붓동생과 함께다. 그런데 잘하는 것이라면 바이올린 연주, 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생활하던 의붓동생이 사라졌다. 막내의 실종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 하나씩 둘씩 밝혀지고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가족이었던가, 가족이라 해서 서로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자문한다.

아마도 작가는 막내의 실종을 기점으로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서먹서먹해 했던 가족들이 하나로 뭉치는 과정과 가족이므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 게다. 하지만 계산이 조금 어긋난 것은 아닐까. 그들은, 소설 안의 이 가족들은 결코 처음부터 가족이었던 사람들과 온전히 같을 수 없다. 혈연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과 은폐의 문제다.

가족도 결국은 각기 다른 개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집단인데 사소한 비밀 한 가지씩 없을 수는 없다. 친구관계, 만나는 사람, 그 날 있었던 일 중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말할 수 없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실이라고는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던 관계가 막내의 실종을 계기로 갑자기 진실과 사랑, 희생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들 가족 중 가장 솔직한 사람은 누나 뿐이다. 불안한 정서의 소유자지만 미움과 증오, 연민과 애정을 숨김없이 표출하는 사람은 그녀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모두 가면을 쓰고 연기하고 있을 뿐. 그러므로 가족의 희생, 큰 일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설정은 작위적이다.

이야기 면에서도 조금 아쉽다. 한 남자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 그 남자와 아이의 관계는 무엇이며 그의 죽음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키며 기세좋게 시작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세심함이 받쳐주지 못한다. 미스터리 형식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꾀했으나, 당연히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희망을 내놓으며 이야기는 갑자기 종결된다. 흐지부지. 뒷심이 부족하다.

작가는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조금 두렵다.

라고 말한다. 그녀의 그 말로 인해 나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으나 그리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라고 말하기가 조금 겁이 났다. 창작의 고통은 조금도 모르는 내가 과연 그녀를 두렵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독자고 그녀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은 '독자'가 있어야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고 믿고 싶다. '가족'이라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의 가슴을 울릴만한 소재로 글을 썼다고 해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졸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그녀에게 기꺼이,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훌륭한 작품' 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싶지는 않다.

글의 끝에서, 나는 가족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자문해본다. 어려운 문제다. 우리도 소설 속 가족들처럼 '집 안'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을 알고 있을 뿐이지 집 밖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가족에 대해 전부 알 수 없고, 가족도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가족이란, 자신의 눈으로 보는 모습들이 진실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가족'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가족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나를 둘러싼 '가족'에 대한 정의다. 작가가 나에게 '너는 가족에 대해 모른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다는 모른다' 라고 대답하면 그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되묻고 싶다. '당신은 가족에 대해 무얼 아느냐' 고.

완벽한 해답은 없다. 그저 함께 웃고 울고 화내고 미워하고 사랑하면서 부대끼며 살아갈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