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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참, 멀리도 사는 토끼입니다. 일만도 아니고 일억에 백만이나 더 붙어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토끼니까요. 무엇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토끼일까요? 이야기에는 원래 두 마리의 토끼가 등장합니다. 지구에 사는 토끼와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두 마리의 토끼는 연인이었지만 지구로 자원해 온 토끼는 '은하계 밖의 혹성 개척단'의 사명을 띄고 있습니다. 그 토끼의 직업은 별닦이에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밤하늘의 별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별닦이 토끼가 열심히 별을 닦는데요, 그 별이 반짝반짝 빛이 나면 상대방도 별을 닦아달라고 부탁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표시랍니다. 별닦이 토끼에게도 자신만의 별이 있어서 항상 그 별을 바라보며 자신의 연인을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니 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표지에서 별을 닦고 있는 별닦이 토끼가 아니라 그의 상대방, 우리가 마음 속에 담아둔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 들어 처음 읽는 일본소설이 아주 몰랑몰랑합니다. 사랑나무 전설을 배경으로 중학교 3학년생인 쇼타 주위에서 벌어지는 포근다정 에피소드들이 추운 겨울밤을 따뜻하게 해주는 듯 해요. 이 이야기에는 커피전문점 암젤을 운영하는 쇼타의 아버지, 어머니, 쇼타, 사스케도 심부름센터 사장인 사스케씨와 아내 구미, 그들의 딸 케이, 치과의사인 요코씨와 사랑나무 전설을 들려준 노교수 아다치 선생, 팥죽할머니 등이 등장합니다. 꼭 그들이 어느 한 마을의 주민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실로 꽁꽁 묶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등장인물이 모두 한 마을 사람이라서 그렇겠지만, 그 외에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비밀도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한 몫 했을 겁니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LP판, 금방이라도 귓가에 들릴 것만 같은 음악들, 어른들 사이의 추억들이 별닦이 토끼와 어우러져 조용히 우리를 웃음짓게 할 거에요. 그런데 전 이제 조금 자란 탓인지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는 점은 고백하렵니다.
나스다 준, 처음 접한 작가입니다. 주로 아동문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작가로 약력을 보니 동화책 위주로 글을 써온 듯 해요.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야기도 아니고 숨이 가빠질만한 커다란 사건도 없지만 일상의 소소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 아웅, 제가 조금 더 나이가 어렸다면 사랑나무 전설을 그대로 재현해보자고 누군가에게 부탁했을텐데요. 로맨틱함, 아직은 잃고 싶지 않은 감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