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서브 로사 1 - 로마인의 피 로마 서브 로사 1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리는 카테고리 이름을 '무지개'라고 지은 것처럼요. 어렸을 때는 무지개 중 어떤 색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갈팡질팡 하기도 했지만, 요렇게 조금 모자란 어른이 된 후에는 '다 좋아!'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비록 일곱가지 색깔이지만 저에게는 그 일곱가지도 참 다양해 보여요. 그처럼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인데요,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죠. '내가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으면 정말 어쩔 뻔 했어! 요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다면 너무 아까울 뻔 했잖아!'라는 생각이요. 마치 곁에 있는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하는 아이가 있어요. 물론 그 '인연'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요. 

로마 서브 로사. 서브 로사 (sub rosa) 는 '장미 밑에 있다'라는 뜻으로 비밀 회의 장소에 장미를 꽂아 두었던 로마 시대 관습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합니다. 사전적으로는 '은밀히', '남몰래'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따라서 '로마 서브 로사'는 역사에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이면을 들추는 것임을 나타낸답니다. 한 마디로 '숨겨진 이야기'라고 할까요. 세상에 공표된 것과는 다른, 어쩌면 우리가 진실은 저 멀리 있다고 믿게 하는 그런 성향의 이야기요. 그런 이야기가 우리 조선 시대도 아니고, 고려 시대도 아니고, 삼국 시대도 아닌 먼 옛날 로마시대에 존재한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구요? 힛!

그래요. 로마라고 뭐 다를 게 있나요? 우리는 우리의 풍습대로 그들은 그들의 풍습대로 사는 거죠. 그들의 풍습을 좌지우지하는 인물, 술라가 독재관으로 재임하고 있던 BC 80년이 이 작품의 배경입니다. 술라, 로마의 훌륭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며 막강한 세력으로 정적들을 몰아내고 독재관이 되어 원로원 지배체제의 회복을 꾀한 인물입니다. 그의 말을 거슬러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고 그의 말이 곧 법인, 그야말로 살아있는 신이죠. 그렇게 그의 날개가 온 로마를 뒤덮고 있는 어느 때,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밝히기 위해서 키케로가 그를 변호하게 되고, 숨겨져 있는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 더듬이로 알려진 고르디아누스가 사건에 뛰어듭니다. 곧이어 다가오는 위험들, 차례로 밝혀지는 음모들이 긴장감으로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든답니다. 

이 작품은 표면상으로는 추리소설입니다. 엄청난 재력가이지만 사랑하는 작은아들을 잃었고 큰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으며 엘레나라는 창녀에게 빠져 있던 한 노인이 살해당한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는 요소는 바로 로마 시대에 대한 작가의 방대한 지식과 논리력입니다. 키케로가 신참 변호사로 활동하는 시기의 정치적인 배경과 이득으로 얽힌 수많은 인간관계, 그 시대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한 건의 살인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어 있는지 낱낱이 파헤쳐주고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가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굉장하답니다. 군더더기가 없는 완벽한 전개과정을 보여주죠.

또 등장인물들도 매력적입니다. 우선 사건 해결의 선두에 서 있는 고르디아누스. 그는 키케로처럼 누군가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위대한 명성을 쌓은 사람은 아니지만, 우직하고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며 정의를 생각하고 자신의 여자를 사랑할 줄 압니다. 앵앵거리는 목소리를 가진 키케로나 미소년이지만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 티로에 비해 훨씬 '남자'라는 느낌을 풍겨요. 그렇다고 이 둘에게 장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가졌지만 그래도 키케로라는 인물을 무시할 수는 없으며, 티로의 충성심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니까요.  

혹시 [임페리움] 이라는 작품을 읽어보셨나요?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으로 그 책 역시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페리움] 과 [로마 서브 로사] 에서 그리는 키케로의 모습이 조금 달라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키케로에 대한 이미지는 '허약함, 약삭빠름, 세치 혀' 뭐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순전히 미국드라마에서 기인한 이미지였죠. [로마 서브 로사] 는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키케로의 이미지와 비슷해요. 어쩐지 신경질적인 분위기, 앵앵거린다고 묘사된 목소리는 간사하다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지 않나요? 그에 반해 [임페리움] 에 등장하는 키케로는 좀 더 활동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서술자가 달라서일까요? [임페리움] 에서는 그의 심복 티로가, [로마 서브 로사] 에서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까요. 물론 티로는 [로마 서브 로사] 에도 등장합니다. 그것도 미소년으로요. 미소년인 티로와 [임페리움] 에 등장하는 티로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아마 이 둘을 비교해서 읽으신다면 색다른 재미를 맛보실 수 있을 거에요.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한 가지 괴로운 일은 이 책도 시리즈인 관계로 다음 권이 나와주길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왜 이렇게 시리즈로 등장하는 책들이 많은 건지요. 하지만 그 기다림으로 인해 다가올 날들이 기대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니겠어요? 앞으로 흠뻑 사랑하게 될 또 하나의 대작 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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