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됐다, 이런  기분이 교감한다는 거구나 싶을 때조차도 쉽게 안심할 수 없고, 한 발짝 다가왔다 싶으면 어느 새 두 발짝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이들이다. 특히 소녀들은 보통 여자보다도 더 갈대와 같아서 어느 때는 헤헤 웃다가도 어떤 말 한 마디에 금방 토라져버리는 특성(?)이 있다. 나도 여자지만 그들보다 10여 년은 더 나이를 먹어서인지 나조차도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힘이 든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함께 점심을 먹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 교실에서 연예인과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울타리는 눈에 보이는 그것보다 더 견고해서 울타리 밖의 누군가가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모두 무장태세를 갖추고 경계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훨씬 부드러운 울타리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만은 나도 안다. 내 친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 얘는 나랑만 친해야 해, 라는 어쩌면 다소 아기같고 이기적인 욕망들. 남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자신들만을 지키고자 하는 소녀들의 그 집념으로 나도 한 때 상처를 받은 적이 있으므로 그 아픔에는 공감한다. 

차라리 어울리지 않으면 마음은 편하나 천지가 당한 것은 은근한 따돌림이었다. 바보처럼 착해서 늘 이용당하고, 화연이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끝내 대놓고 말 한 번 못해보다가 결국은 자신을 버린 천지.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천지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늘 화연이와 어울려야 했다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지 그건 장담할 수 없다. 천지의 선택을 마냥 잘못된 것이라고, 그래서는 안되었다고 질타할 수만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 전부일 수 있으니.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천지보다는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해야 한다. 다른 이로 하여금 내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게 하지 못하도록, 거짓 때문에 내 진짜 모습이 가려지더라도 그것 때문에 내가 상처받을 이유는 없다고 당당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긍지는 필요하리라 믿는다. 조금 외롭긴 하지만 내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다른 친구는 금방 나타나니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려령 작가의 [완득이]를 다른 독자들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일들이겠지만 유쾌함이 느껴져서 좋았고, 방황하는 완득이의 모습이 담담하고 간결하게 그려져 있는 듯 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민감한 따돌림 문제에서만큼은 그의 묘사가 조금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너무 감정적으로 치우쳐있다. 슬프지도 않은데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야 하는 시한부 인생을 그린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가슴이 아프기는 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는 정말 안 될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천지의 죽음을 너무 감상적으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으며 개인적인 욕심이겠지만 이런 일에 대한 냉철함과 이성적인 작가의 조언이 약간 부족한 듯 싶다. 작가가 교육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것까지 제시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주제의 글을 쓰고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내용은 들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무척 인위적이다. 천지의 언니 만지와 만지의 친구 미란, 또 천지와 같은 반이었던 미라, 화연이네 동네로 이사간 아파트에서 만난 오대오 아저씨와 천지 가족의 관계에 우연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어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진다. 주제는 현실적이나 내용 구성은 허구적인 느낌이 강해 두 요소가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득이]에서 보여주었던 경쾌함이 이 작품에서 뜻밖의 경우에 엿보이는 것, 천지의 독백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점, 과거와 현재가 일관성 없이 전개되는 것 등도 다소 아쉽다.

음..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불만이다. 책 중간 즈음에 '바로 이 때 초짜 선생님은 정신줄을 놓게 된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일로 초짜 선생님이 정신줄을 놓고 마는 일을 두고' 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상황은 어떤 아이가 미니홈피에 올린 글을 정리한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작가도 글을 쓰기 위해 학교생활에 관한 취재를 했을 것이고, 아이들이 쓰는 말투와 행통에 대해 여러모로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정신줄을 놓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읽게 될 소설에서. 그저 씁쓸할 뿐이다. 

어쨌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는 괜찮다. 누구나 쉽게 쓰지 못하는 주제를 이렇게 건드리기까지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상처에 민감해지기를 바란다.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어서 깨닫기를, 자신이 주목받기 위해 누군가를 험담하고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려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빨리 알아주기를. 누군가에게 준 상처가 자신에게는 배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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