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잘 알려져있듯, 역사적 사실과 인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호색한에 난봉꾼이라고만 믿었던 백제 의자왕도 정치적 세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복잡한 혼인관게를 맺었고, 3천궁녀의 안타까운 운명 또한 그의 책임만은 아닐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런 내게 아서, 카멜롯, 귀니비어, 멀린은 그저 매력적인 환상의 인물로만 남아있다. 내가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들어온 그들의 이름 앞에 항상 '매력', '빛'이라는 단어가 함께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날,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든 아서가 왕이 되고 아름다운 아내 귀니비어와 함께 했지만 결국 그녀가 아서를 배반하고 란슬롯과 도망친다고만 알았던 아서왕 이야기에는, 그러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숨겨져 있었나 보다. 요렇게 그들을 배경으로 그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탄생한 걸 보니.
 
어쩌면 이 책은 촛불이 일렁이는 밀실이나 고성에서 읽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은 작품이다. 아서를 섬겼던 베르델이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풍긴다. 어쩐지 불안불안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옛날 냄새가 나고, 끊임없이 옛날을 추억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나는 추억과 그리움에 약한 사람이므로. 과거에는 아서 옆에서 용맹하게 군대를 이끌고 다른 신을 믿었던 베르델이 지금은 어째서 수사가 되어 아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 자체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이렇게만 말하면 이 책이 대단히 감성적인 작품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 만큼이나 스케일이 크고 심장을 박동시키는 힘을 가진 책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했던 마법과 요정 등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주문이라면 등장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 또 그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 사랑에 빠져 평화를 깨트려버린 사람, 섬기는 주군을 믿고 목숨바쳐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동감있고 생생하며 그 어떤 작품보다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들의 함성이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 그 점이 [반지의 제왕]과 비교했을 때 더 큰 재미를 맛보게 해주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다. 멋지고 굳건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해왔던 아서는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늘 고민한다. 위대한 아서왕의 모습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왕의 이미지다. 오히려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르벨의 위용이 좀 더 빛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아서왕 연대기의 1편이므로 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해갈지 궁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조금은 더 인간적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멀린이었는데, 선하고 신비한 이미지였던 그는 여기서 괴팍한 노인네로 그려져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어떤 모습이 진짜일지 알 수 없으므로 그저 즐길 뿐이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전투'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한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고 갈등은 깊어지며 싸움은 계속된다. 그러나 각각의 전투는 모두 다른 의미를 가진 싸움이며 때문에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고 해서 지루할 틈은 없다. 오히려 의리 있고 용기로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질지도. 등장인물이 엄청나서 약간 헷갈리고 살짝 두꺼워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만 빼면 촘촘한 구성과 방대한 이야기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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