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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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이 말부터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요! 아주아주라는 말을 잘 써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어쩐지 외계어처럼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믿어주세요. 전 별 갯수에 있어서 관대한 편이에요. 어지간해서는 별 셋도 미안해서 못 주고 손가락을 벌벌 떨며 세개 반을 클릭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별 다섯에 가까워질수록 평가는 냉정해진답니다. 믿으시거나 말으시거나~어쨌든 할런 코벤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 작품은 앞으로 이 작가를 매우매우 사랑해줘야겠구나, 라고 굳게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대학원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대기실에서도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공부하는 대기자들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탐독해주었답니다. 히.

그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살짝만 볼까요? 오늘 만날 주인공은 맷 헌터라는 남자에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죠.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모두 정정하시며 사이좋은 형제들 속에서 자란, 그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대학 파티에 갔다가 술에 취해 시비를 걸어온 사람을 실수로 죽이고 맙니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정확히는 말씀 못드리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도 실수가 맞는 것 같아요. 몸싸움을 하다가 둘이 엉겨붙어서 넘어졌고, 피해자의 뒤통수가 보도에 부딪혔거든요. 하지만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는 교도소에서 4년을 보냈고 이제 평생을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그의 곁에는 임신한 아내 올리비아가 있습니다. 그녀를 통해 비로소 행복을 맛보려는 찰나, 이게 웬걸. 임신 기념으로 산 커플 핸드폰으로 그녀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전송된 겁니다. 헉, 뭘까~요?

스릴러인만큼 진행이 빠릅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순식간에 주인공을 압박하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긴장감이 목까지 차오르죠. 거기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어두운 굴 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다음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밖으로 홱 나왔다가 다시 360도 회전을 하다가 갑자기 아래로 추락하는 듯한 스릴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롤러코스터를 타 본 적이 오래되서 이 느낌이 맞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읽는 동안은 내내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빨리 사건의 전모를 알고 싶어지면서도 '안돼! 아직은 안돼!'라는 절실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책이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스릴러이기도 하고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의 애달픈 인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해요. 어쩌면 스릴러라는 탈을 드라마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군요. 긍정적인 쪽으로요. 실수로 누군가의 미래를 빼앗아버린 맷,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아픈 과거를 간직한 채 이제야 겨우 행복을 붙잡으려는 그의 아내 올리비아, 아버지의 자살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평생 원망해 온 형사 로렌, 베일에 쌓인 메리 로즈 수녀와 올리비아의 친구 키미까지. 스릴러 소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섬세한 심리묘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 아픔,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고, 어느 새 그들의 감정, 이유에 동조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로렌 형사가 그녀의 어머니 카르멘과 화해하는 장면이요. 그 장면이 그렇게 제 마음을 울리더이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의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결국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표면적인 것이겠죠. 진실한 마음, 누군가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견뎌냈을지 알게 되는 건 어떤 경험을 한 뒤일 거에요. 무언가를 깨닫게 할 경험이요. 그 동안 흘렀을 시간들은 무척 아깝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고 뒤에서 우리를 바라봐 준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뭐,그런 사람이 있다면요.

만약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스릴과 섬세함으로 가득차 있다면 정말 사랑해주고 싶습니다. 요즘 읽은 스릴러나 추리소설 중에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사건을 저지르는 범인과 그것을 수긍해버리는 주인공들이 꽤 있어서 실망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한 번 이 책 손에 들어보세요. 아마 손가락이 풀로 바른 것처럼 페이지에 딱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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