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바라기가,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뒤돌아있다. 늘 태양을 바라보며 태양에 대한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해바라기. 해바라기에게 있어 태양은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 삶의 근원이었다. 태양 없이 해바라기는 있을 수 없다. 그 태양을, 그 사랑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평소라면 징그러워했을 식물의 뒷모습이 이토록 애처롭게 다가오는 것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하늘에 태양이 존재하지 않으면 해바라기가 더 이상 하늘을 쳐다 볼 이유도 없다는 것을. 

소년법에 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만도 억울한데 법은 범인을 심판해주지 않는다, 원통한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범인이 미성년자라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듣는다면 나 또한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법이 심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무엇을 잘못했는지 일깨워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남은 숨을 이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일도 당하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피의자의 입장도 고려하게 된다. 직업이 직업인 이상, 그 아이가 정말 완전한 악일 수는 없을 거라고, 분명히 갱생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이야 어려서 그렇지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성장하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진다. 아직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든다. 아무리 어려도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과연 양심은 있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자꾸만 갈팡질팡하게 되는 마음은 점점 내 숨마저 옥죄어 오는 것 같다. 

한 교사의 고백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방학을 앞두고 교사직을 그만둔다는 말과 함께 간단한 훈화로만 여겨졌던 이야기는 어느 덧 얼마 전 죽은 교사의 딸에게까지 이른다.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이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과 함께 교실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각 챕터는 범인인 슈야와 나오키의 시점, 나오키의 누나의 시점, 같은 반이었던 미즈키의 시점으로 옮겨가며 사건과 사건이 불러온 반향에 대해 서술한다. 각 챕터에는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데, 까만 바탕에 하얀색으로 너무나 정직하게 쓰여져있는 듯한 글자가 어쩐지 오싹하다. 

서술자가 교체되는 구성 방식은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서술자가 한 명이라면 단편적으로 보여졌을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다면적으로 서술되며, 사건의 본질에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흰색으로 보였던 것이 어느 새 회색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까만색으로 보였던 것이 하얗게 변하기도 한다. 단, 어느 점을 교차점으로 할 것인가, 어떤 점에 중점을 둘 것인가를 잘 설정해야 지루해지지 않는데 이 작품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배경과 심리묘사가 매우 치밀하여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인간의 심리묘사에 상당히 능통한 사람인 듯 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만 얻을 수 있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와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피해자가 교사여서 그런지 '길을 잘못 들었다가 갱생한 사람보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던 사람이 당연히 훌륭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사람은 평소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요' 같은 문장에서는 동의하면서도 가슴 한 쪽이 알싸해져 오는 것이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사건,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아이들 사이에 번지는 미묘한 감정들. 어쩌면 이 사람은 교사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과연. 효고 현의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데뷔작이라고는 볼 수 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첫 번째 만남이 좋으면 그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지는데 아무래도 이 작가의 책은 발간되는 족족, 내 책장을 채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 읽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아지나 콱 막힌 목구멍과 허탈한 가슴을 안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게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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