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오래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써 온 일기, 어린 시절부터 모아온 엽서들, 친구들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생일카드 등으로 내 책상서랍은 늘 한가득이라, 엄마가 이제 그만 좀 버리라고 잔소리를 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상도 하지. 평소 때는 생각도 나지 않고, 서랍을 열어보지 않는 이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물건들인데도 막상 버리려고 하면 가슴 한 쪽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다. 아이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 그것들은 마치 자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려고 큰 맘 먹고 열어놓은 서랍에서 이것저것 읽어보고 한바탕 웃은 뒤에 다시 서랍을 닫곤 한다. 그것들은 그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의 다른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꿈을 파는 빈티지샵]은 그런 소중한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12년 동안 소더비에서 경매를 주관했던 주인공 피비는 오래전부터 오래된 물건에 애착을 가져왔다. 그래서 런던의 어느 길모퉁이에 열게 된 빈티지 샵 '빌리지 빈티지'. 오래된 물건을 사들이고, 또 그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팔면서 각각의 사람들의 웃음과 울음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특히 빌리지 빈티지에서 판매하고 있는 오래된 드레스들에 내 마음도 홀딱 빼앗겨 버렸다. 무슨 무슨 디자이너의 무슨 무슨 상품인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드레스들을 묘사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니까. 특히 '컵케이크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 드레스 자체를 그려보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 드레스들을 둘러싼 여자들의 알콩달콩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빌리지 빈티지이지만 정작 슬픔에 빠져 있는 주인공 피비. 친구 에마를 잃은 이유가 자신 탓이라며 약혼자와의 결혼도 취소하며 똑같은 일상을 보내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텅 비어 있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여러 남자들과 그녀와 비슷한 상처를 간직한 벨 부인. 벨 부인과 아픈 기억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그녀는 비로소 빈티지 물건들의 진정한 가치를 가슴 속에 새길 수 있게 된다. 

한 번 잡으면 따뜻한 느낌에 전염되어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지만, 가끔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피비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도 물론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친구를 잃고 죄책감으로 가슴 속이 텅 비었을 그녀가 여러 남자와 쉽게 데이트를 하는 모습이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또 데이트하는 남자 중 하나인 마일스의 딸과의 갈등은 굳이 필요했을까, 피비의 그런 로맨스보다 빌리지 빈티지에서 물건을 사고 그 물건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패션과 빈티지 물건에 대한 상식이 전무한 나같은 독자를 위해 몇 년 산 어디 제품이라고 설명된 부분에 그런 이미지의 옷들을 적절히 삽입했다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지만 책장이 넘어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과 용기를 전달해줄 수 있는 빈티지 샵. 만약 내가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이런 샵을 하나 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피비가 부러웠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빈티지샵,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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