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조금 특이한 외모에 독특한 생각을 가진 와타루. 유전자를 연구하는 엄마와 둘이 사는 와타루는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늘 혼자였다. 혼자일 때 혼자인 것이 외롭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존재가 필요할 때는 외로움이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은 그는 홀로 낚시를 하고 산을 즐기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소련시대의 서시베리아 빙하에서 크로마뇽인의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고, 그 곳에서 어머니가 젊은 시절 연구조수로 있었다는 점을 연결시키며 자신은 실험으로 태어난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때로는 탐정의 모습으로, 때로는 한 아이를 유괴하려는 어설픈 범인의 모습으로, 어떤 때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유랑가족의 모습으로 따스함과 유머를 전했던 오기와라 히로시가 이번에는 한 편의 가슴뭉클한 성장소설로 찾아왔다. 따지고보면 그의 작품은 언제나 성장소설이었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려 보듬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장'이 지향하는 점일테니까.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마음의 성장 뿐만 아니라 몸도 같이 성장하는 진짜 아이가 등장한다는 점이 약간 다르다. 최초의 기억을 간직한 네 살 무렵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의 부재를 가슴 아프게 깨달아야 했던 어느 순간부터 와타루의 가슴에는 커다랗게 구멍이 생겼다.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을 조금이라도 작게 만들고자 와타루는 끊임없이 달리고, 크로마뇽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이라 믿으며 돌도끼, 망치, 손도끼등을 만들기 시작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고, 친구라는 이름에 너무 쉽게 기대어 상처도 받았지만 그의 가슴 속을 채워주는 것은 '크로마뇽인이기는 해도, 그래도 나에게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 하나였던 듯 하다. 자신은 제4빙하기라는 가혹한 시대를 견뎌낸 위대한 크로마뇽인의 후예니까.
 
'다르다'는 사실과 '소문' 앞에서 인간은 늘 약한 모습을 내보인다.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감정은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것은 '다르다=옳지 못하다'는 감정으로 변화해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버린다. 그 중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름을 옳지 않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름은 그저 다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일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어 준 도라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늘 독려해 준 가지마처럼. 어느 날 와타루의 인생으로 걸어들어와 혹독한 제4빙하기를 함께 이겨내 준 사치처럼. 늘 그의 마음을 지탱해주었던 다정한 어머니처럼.
 
언젠가부터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크로마뇽인을 아버지라 여기고 살아왔던 덕분에 와타루는 이겨낼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믿는 것은 내 마음. 믿지 않는 것도 나의 마음. 그러므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을지,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다. 그리고. 와타루는 훌륭하게 잘 자라주었다.
 
운동을 사랑한 와타루 덕분에 소설은 스포츠 소설같은 분위기를 띄기도 한다. 과정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발전해가길 바라는 마음이 쿨렁쿨렁 솟아올랐다. 오기와라 히로시가 가지고 있던 유머와 따스함도 여전하지만 전의 작품들에 비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크로마뇽인과 와타루를 떠올리자. 제4빙하기를 견뎌낸 크로마뇽인과 아팠지만 아름다운 청춘 속을 힘차게 달려가는 와타루,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한 여성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 크로마뇽인이 견딘 빙하기와 와타루가 견뎌낸 빙하기를 우리도 견뎌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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