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주말이면 집에 가 뒹굴뒹굴 구르며 책을 읽는 나를, 약 석달 전부터 부모님이 채근하기 시작하셨다. 두 살 어린 사촌동생의 결혼식이 다가올즈음 압박은 점점 심해졌고, 결혼식이 끝난 지금까지 상대가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내년 가을에는 꼭 결혼하도록 해라' 라는 말씀부터 급기야는 '책 좀 그만 봐라, 앞으로 택배는 받아주지 않겠다' 같은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신다. 부모님 눈에는 쟤가 저렇게 책만 보다 짝도 못 만나고 노처녀 되겠다는 걱정이 앞서신 듯 하다. 뭐가 그리 급하시냐고 헤실헤실 웃으며 넘겼던 말씀들에, 인내심이 다 했던지 지난 주말에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와 투닥투닥 나누던 대화 중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생각해 본 말씀이 있다. '너는 책을 대체 왜 보니?'

나는 책을 왜 읽을까. 글쎄. 나는 내가 책을 왜 읽는 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늘 곁에 책이 있었고, 도서관을 좋아했고, 책이 없으면 허전했고, 그 뿐이었다. 가끔 책 읽기를 뒤로 하고 다른 일에 빠진 적도 있지만 언제나 내가 돌아가는 곳은 책 속 세상, 그 곳이었다. 물론 나의 독서에는 '재미'가 빠질 수 없다. 재미가 없었다면 나는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므로. 어떤 사람들은 배움을 독서의 제1조건이라 꼽겠지만 나에게 독서는 재미있는 것이어야 했다. 

재미있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계속되었던 독서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치유'라는 이름을 대신했다.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 나에게도 있었고, 태어나서 그 때까지 그리 큰 굴곡 없는 인생을 살던 내게 일어났던 가장 큰 일이었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돌아갔다, 책으로. 책이 나를 구원해주었고 내 아픔을, 내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는 어떤 책쟁이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감히 '고수'라 칭할 수 있는 그들의 독서 편력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서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들은 무슨 사연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독서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왜 책을 읽는지 알고 싶었다. 옷이나 가방, 구두를 사는 일보다 책을 사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내가, 부모님의 말씀처럼 쓸 데없는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기도 했다. 

과연. 이 책에 소개된 고수들의 책은 숫자에서부터 대적할 수가 없었다. 내 방에 있는 책을 보고 한숨을 푹 쉬시며 '저 책을 다 어찌할래'라고 걱정하시는 부모님이 이들의 서재를 보신다면 나의 책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텐데. 에세이와 미술책, 역사책을 제외하고 거의 소설에 편중되어 있는 나의 독서와는 달리 그들의 분야도 다양했다. 누구는 시를 쓰며 시집을 모아 찻집을 냈고, 누구는 북카페를 차려 허브빵과 차를 함께 대접하며, 어떤 이는 학교에서 재미있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가르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진리를 찾아, 자아를 찾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책 모으는 재미를 나도 알고, 얻고 싶었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반가움을 나도 절실히 느껴봤다. 또한 그들은 책을 통해 스승을 얻었고, 아내를 만났으면, 남편을 얻었다. 책이 단순한 글자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상 밖에서 활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모은 책은, 부럽지 않았다. 나에게도 나만의 책들이 있으니까. 다만,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예전과 조금은 달라졌을까. 책을 통해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책으로 내가 얻은 첫번째는 '감정의 추스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책은 다시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어떤 의미로 어떻게 다가올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알게 될 때까지 나는 독서를 계속할 테다!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고 한들, 책이 없는 세상은 재미가 없다는 것 한 가지는 이미 명확하다.




   무지개 쫓기를 단념한 순간 폭삭 늙어버렸다.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