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띠지에 적혀있는 문구가 무섭다. '죽은 할머니의 영혼이 10대 소녀의 몸속에 들어가다!'라니. 분명히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 문구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란다. 헉! 뭐지. 공포소설로 청소년문학상을 어떻게 받았을까-라는,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첫 장을 펼쳤는데! 또 놀랐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굿을 한단다. 갑자기 온갖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창밖을 보기가 싫어진다. 할매 귀신이 18층 높이인 우리집 창문 밖에 서 있을까 봐. 꺄울!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성장소설이 좋았다. 그 감정은 어렸을 때보다도 나이를 먹을수록  더 짙어지는 듯 하다. 어릴 때는 크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집중하는 것은 자기자신과 친구정도일까. 가족보다도 친구와 비밀을 나누고,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만나도 반가워 껴안고 꺄꺄 소리 지르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가슴 속에 쌓이는 상처도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곁에 있는 친구와 가족, 연인도 물론 소중하지만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인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어릴 때는 잘 읽지 않았던 성장소설에 자주 마음을 위로받곤 한다.  읽으면서 유쾌해지고,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어 스스로의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릴 수 있게 된다. 

공포소설인 줄 알았던 이 책에는 유머도 있고, 아픔도 있고, 애잔함도 있다. 마냥 말괄량이에 철없어 보이는 주인공 은재와 엄마의 투닥거림에는 평소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음을 깨물었고, 할머니가 은재의 몸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지 궁금했으며, 뜻밖에 아픔을 간직한 은재의 모습과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는 가슴이 찌릿찌릿 저며오기도 한다. 거기에 어른스러운 은재 친구 은혜와 은재의 우정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 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세상 고민의 해답을 스스로 찾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할머니가 손녀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조금 다른 걸 기대하기도 했다. 이왕 할머니가 은재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면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해도 좋았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그저 은재의 입을 빌려 가끔 이야기하고 겁(?)을 주고, 부탁을 하지만 활약이 그리 크지 않다. 나는 할머니가 은재에게 더 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활력적인 관계를 상상했기 때문인지 어째 할머니의 비중이 작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톡톡 튀는 문체가 매력적으로, 요즘 아이들의 발랄하면서도 그들이 간직한 고민으로 인해 우울해하는 모습들을 잘 그려낸 듯 하다. 어른이 되어 쉽게 잊어버릴 법한 십대들의 고민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들이 뭉클하게 전해진다. 이것저것 벌어진 일이 많아 약간 산만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명랑유쾌애잔의 즐거운 성장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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