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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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예전 그녀의 이야기들에는 온전히 빠져들 수 없었다. '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라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가 [왕국]을 지나오면서 약간 변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왕국]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어쩌면 요시모토 바나나는 늘 그런 이야기를 써왔는데 내가 늦게 발견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 책 [무지개]도 [왕국]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다.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타히티를 배경으로 은은하게 펼쳐진다.
 
이 책에서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 역시 줄거리에 집중하기보다는 분위기와 타히티라는 배경에 흠뻑 빠져들었으니까. 이 책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느낌들이 가득하다. 몽실몽실한 강아지와 고양이,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풍성한 정원, 이국적인 섬과 환상적인 레몬색 상어, 주인공과 오너의 서로를 이해하는 사랑 이야기까지 따스한 느낌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마치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물결이 이끄는대로 몸을 맡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옥의 티라고 한다면 오너의 사랑고백이 약간 당황스러웠다는 점이랄까. 나는 사랑의 과정을 더 좋아한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설레하다가도 주저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 그런 사랑의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아무 예고없이 이루어지는 느닷없는 고백에 살짝 멍~했다.
 

살다보면 지칠 때가 있다. 버릇처럼 나오는 '아우, 지쳐'의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고 내 몸이 바닥 밑으로 가라앉는듯한 때가 가끔 한 번씩은 온다. 그럴 때는 자신만의 처방약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또 나처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가슴 속을 재충전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좋은 일도 늘 좋을 수만은 없고, 나쁜 일도 늘 나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삶에 대해 좀 더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됐지만 시련은 항상 힘들고 행복은 늘 좋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도 무지개처럼 찬란한 빛깔을 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임을 여전히 믿고 싶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 어떤 핑계나 이유도 대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느끼고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고 소중한 사람은 언제 곁을 떠날 지 알 수 없으니. 후회없이 선명한 무지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용기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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