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 인 서울 Agit in Seoul - 컬처·아트·트렌드·피플이 만드는 거리 컬렉션 in Seoul 시리즈
민은실 외 지음, 백경호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받아들었는데 새 책 냄새가 코를 찔렀다. 페이지마다 숨어서 종이를 휘리릭 넘길 때 슥 빠져나와 머리를 아프게 했던 그 냄새는 어쩐지 서울의 냄새와 닮아 있다. 옆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늘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자동차들로 가득한 곳.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음에도 '서울'하면 떠오르는 것은 높은 빌딩과 도시를 상징하는 온갖 것들이었다. 그런 서울이, 내가 숨쉬고 있는 이 도시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처럼, 어쩌면 이 도시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외에 다른 알맹이로 속을 채우고 조금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과 함께 나는 서울탐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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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낯선 듯 익숙한 곳

이 책에서 소개된 장소는 잠깐만 눈을 옆으로 돌렸다면 쉽게 '아! 여기!'라고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곳이다. 나에게는 '정동길'이 그랬다. 나는 그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매일 아침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달리다 보면 내 몸을 내가 주체할 수 없어졌다;;) 돌담길을 지나쳤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 무작정 앞만 보고 걸었지만 밤에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걷던 그 길은 참 예뻤던 기억이 난다. 사진에 있는 빨간 공중전화 박스는 그 때부터 있던 것으로 분위기 있는 돌담길과 함께 늘 영화촬영의 중심이 되곤 했더랬다.  



생각해보면 그 곳은 우리의 지나간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었다. 덕수궁으로 많이 알려진 경운궁과 근대 초기의 건축물,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 등 벽돌 하나하나에 시간의 숨결이 묻어있다. 참고로 그 역사적인 건물에서 나는 공연도 보았고,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심슨관에서 수업을 받았다. 크하! 

돌담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보면 곳곳이 미술관이다. 물론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벽에도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매우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속속들이 둘러본 적은 없지만 정동극장 앞 벤치에 앉으면 정동 라디오 공개 방송의 음원을 들을 수도 있다 하니 도심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기에 적당한, 그러면서도 예술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듯 하다.   



정동길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학로나 삼청동의 길도 이 책을 통해 만나면 낯선 듯 익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2. 아니 이런 곳이!!

나는 친구들에게 가끔 '서울ㅊㅗㄴㄴㅕㄴ'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너 여기 알아? 여기 가 봤어?'라는 질문에 '아니 잘 몰라'라고 대답하기 일쑤니 그런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하지만. 새로운 곳을 발견하기보다 익숙한 곳만 찾다보니 아무리 서울에서 오래 살았어도 즐겨 다니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곳. 그래서 이 책을 읽다가 '뭐야, 이런 곳도 있단 말야'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가장 눈에 띄었던 곳은 삼청동길에 자리잡은 <북카페 내 서재>였다. 사진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 곳에 가면 왠지 다락방에 숨어 책을 읽는 듯한 구수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과학, 인문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3000여 권 서가에 꽂혀 있으며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오고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라니, 나처럼 책에 빠진 사람에게는 꼭 한 번 탐방(?)해야 할 장소가 아닐까. 삼청동에 간다면 삼청파출소 옆에 있는 벼룩시장도 꼭 들러보고 싶다. 히. 
  




3. 그런데 가격이 착하지 않아

아기자기하고 흥미로운 책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여기에 소개된 장소가 꽤 비싼 곳이 많다는 점이다. 커피값도 그렇고, 음식 값도 그렇고. 서울 투어를 한 달 내내 하다가는 모아놓은 돈을 다 탕진할지도. 이 책을 따라 쇼핑이나 헤어관리를 받으면 한 달 이내가 될 지도 모르니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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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을 듯. 만약 [아지트 인 서울 2]가 나온다면 그 때는 구수한 사람들의 냄새가 나는 곳도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인형같았다. 책에서 풍기는 냄새처럼 선뜻 다가서기 힘든 딱딱함이 있달까. 가장 오래 머물러 있으나 가장 알지 못하는 곳 서울. 그 서울의 곳곳, 골목길골목길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사진도 많고 찾아가는 길, 운영시간,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 등도 세세하게 나와있어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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