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 빈센트 람 소설
빈센트 람 지음, 이은선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미드 <그레이스 아나토미> 가 '의학드라마의 탈을 쓴 연애드라마'라는 평을 받고도 인기가 있는 이유는 캐릭터와 스토리의 힘이 크다. 시애틀 그레이스 병원에서 같은 시기에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메러디스, 도도하고 얄미울만큼 똑똑한 크리스티나, 착하고 정많은 이지, 맹해보이지만 순수하며 결정적일 때는 제 역할을 다 하는 조지, 때로는 비열하지만 상처를 간직한 알렉스를 중심으로 엄하고 완고하지만 누구보다 인턴들을 챙기는 베일리와 따뜻한 아버지같은 과장님까지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히 힘을 발휘한다. 비록 그들의 연애사가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중심이 될 때도 있지만 병원 안에서 일어나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왜 <그레이스 아나토미>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 책 뒷표지에 '<하우스>보다 긴박하며, <그레이스 아나토미>보다 섬세한 의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라는 문구가 씌어있기 때문이다. <하우스> 는 띄엄띄엄 봤기 때문에 그 드라마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이게 대체 연애드라마야, 의학드라마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레이스 아나토미>는 꾸준히! 챙겨봤기 때문에 조금 할 말이 있다. 사실 뒷표지의 문구를 보고 이 책에 대해 살짝 기대를 했었는데,  만약 <그레이스 아나토미>를 보지 않고 이 책을 먼저 봤다면, 글쎄, 나는 <그레이스 아나토미>의 매력을 잘 파악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일단 시도는 좋다. 밍, 피츠, 천, 스리라는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그들의 시점에서 각 챕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느 때는 환자들의 시선으로 전개될 때도 있다. 단순한 의학소설이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는 점도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아쉽지만 네 명의 캐릭터가 개성을 가지지 못한다. 밍과 피츠, 천과 스리는 네 명이라는 개인이면서 그 넷이 하나를 이뤄버린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레이스 아나토미>처럼 인물들의 특징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몰입이 잘 되지 않고, 밋밋하고 들쑥날쑥한 네 의사들의 등장에 '이건 또 누구 이야기야'라는, 생겨서는 안 될 의문이 생겨버린다. 

게다가 의학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동'이 적다. 내가 감동을 느끼는 점과 이 책이 전하는 감동점이 다른 것인지 몰라도 의학물의 탈을 쓴 연애물인 <그레이스 아나토미>에서조차 맛볼 수 있었던 감동과 생동감이 아무리 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거나, '병과 치유, 그 긴박한 과정 속에 숨겨진 생의 축복'이라는 문구는 참 좋은데. 흑. 

늘 이야기하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이 글 또한 무척 주관적인 평임은 잊지 마시기를. 만약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느꼈다면 그 감동점을 부디 저에게 콕콕 집어주세요. 저의 감성을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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