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책도 사람처럼 제각각이라, 한 번 만나면 그 느낌이 영원히 지속되는 책이 있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전하는 책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책 중 지금 생각나는 것은 둘인데 그 중 하나가 [어린왕자] 다. 중학교 때인가, 처음 만난 [어린왕자]는 읽을 때마다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처음엔 단순한 동화였다가, 그 다음에는 철학이었다가, 또 그 다음에는 여우와 어린왕자의 연애소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늘 어린왕자. [스피벳]이 앞으로 나에게 몇 번이나 읽힐지, 또 그 때마다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피벳이 자꾸 [어린왕자]처럼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이 도착한 순간부터 정들어 버렸다. 넓고 크고, 내가 좋아하는 사이즈다. 예전에 [페이지 마스터] 라는 책이 있었다. 지금도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는데 그 책 크기만하다.   

휘릭 넘겨보니 본문 한 가운데는 공책같은 무늬가 있고 양 옆은 사진, 그림, 지도, 작은 글씨들이 채우고 있다. 작은 글씨야 주석이라 생각하면 그만이고, 사진은 참고용이라 생각하면 되지만 헥, 이 그림들과 지도는 뭘까.  

 첫 페이지부터 살짝 복잡해 보이는 지도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 그림과 지도는 중요하다. 스피벳은 열 두살이지만 과학 도해와 세밀한 지도를 학술지에 기고해 온 천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피벳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스피벳의 정식 이름은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이다. 그가 태어나던 순간 참새(sparrow) 가 주방 창에 부딪혀 죽었기 때문이다. 스피벳에게는 농장 일을 하는 아빠와 과학자인 엄마, 누나인 그레이시가 있고, 총기사고로 죽은 동생 레이턴이 있었다. 스피벳은 도해에 관해서는 천재로 그 실력은 엄마의 친구인 욘박사가 인정했다. 그 욘박사가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스피벳의 도해를 보냈고, 스미스소니언협회는 급기야 스피벳을 저명한 베어드상 수상자로 선정한다. 시상식에 참석해달라는 전화를 받은 스피벳은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 몰래 짐을 꾸려 박물관이 있는 워싱턴까지 1800마일의 기막힌 여정을 시작한다. 

스피벳의 생활은 농장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생의 죽음이 자신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은, 그를 농장생활에 끼워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했고 그림과 지도 속에서만 생활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있어 자신은 쓸모없는 자식이고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죽인 못된놈이며, 그로 인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낀 스피벳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짐을 쌌다. 틀에 갇힌 생활에 익숙한 그에게는 열차를 세우는 것, 그 열차를 타고 워싱턴으로 향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모르던 세상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아니라 가족 안에 있었다는 것을 스피벳은 깨닫는다. 마지막에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아빠, 가요' 라고 말하는 장면은 앞의 모든 여정을 끊임없이 주시한 독자에 대한 작은 감동선물이라고 할까.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히 본문 옆에 그려진 갖가지 지도와 그림, 그리고 주석들이다. 복잡하고 작은 그림이긴 해도, 본문보다 작은 글씨체라 살짝 눈이 아프기는 해도 그것들을 놓치면 스피벳을 읽는 재미가 반은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무리 눈이 아파도, 설사 읽는 것이 귀찮아도 그 과정을 꾹 참고 견디면 스피벳의 매력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과 주석들이 책을 여러 번 뒤적이게 하는 포인트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영화 <어거스트 러쉬>가 생각났다. 어거스트 러쉬도 스피벳도 모두 천재적인 소년이었고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뿌리 안에서 위로받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스피벳이 택한 위험한 여정의 목적지는 결국은 가족과 그들의 이해와 사랑이었던 듯 하다. 아픔은 치유되었고 스피벳은 더욱 성장했으니 그의 머릿속은 더 멋진 도해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다른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매력과 성장소설의 묘미를 함께 지닌, 굉장히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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