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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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여사의 책을 손에 잡을 때 느껴지는 두 개의 상방된 감정들. 하나는 기대감, 다른 하나는 그래도 멀리 해보고 싶어지는 일종의 반항심리다.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시작으로 온다 여사의 팬이라 자처하는 나지만, 그녀의 글에 대한 내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가슴이 뛰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오기가 동반된 책읽기는 나 자신과 독서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라 불리며 일상의 미스터리를 그리는 온다 여사는 마음 속에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밤의 피크닉]이나 [흑과 다의 환상] 처럼 그녀의 장점이 최대로 발휘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단순한 상상력의 나열에 그치는 작품들도 많았는데 [한낮의 달을 쫓다] 는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처럼 그녀의 진가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미스터리함과 향수가 가득한 몽롱한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설정은 온다 여사의 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도이기는 하지만 궁금증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는 최대의 매력이라고 할까. 

이 작품 역시 시즈카의 이복 오빠 겐고를 찾아 다에코와 나라를 여행하면서 벌어지는 일상 미스터리에 관한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여기서는 다에코가 그 토끼가 되어 시즈카를 이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밝혀지는 숨겨진 이야기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우리를 놀라움의 세계에 빠트릴 것인지 궁금해서 자기도 모르게 숨이 가빠온다. '빨리, 진실을 알려줘'라는 마음이 되어 책의 맨 끝장을 들춰보고 싶은 마음에 손가락이 간질거렸다. 

그러나 온다 여사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결말이 아니라 과정에 집중된다.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지,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엎치락뒤치락 뒤집어지며 점점 진실에 근접해가는 과정 속에서 긴장감은 높아지고 결말에서는 '아아, 역시' 라는 기분을 맛보는 것이 묘미라면 묘미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토끼'는 여러 가지를 의미하는 듯 하다. 시즈카를 인도하는 다에코를 의미하기도 하고 겐고의 헤어진 연인인 유카리를 상징하기도 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어버린 겐고와 시즈카의 어머니를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시즈카 외의 주변 사람들의 집합체인지도. 토끼에 대한 기묘한 분위기와 나라라는 일본의 고풍스러운 도시여행 그리고 작품 속에 등장한 옛 이야기들이 온다 여사의 작품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여행'이라는 비일상적인 날을 택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각 장의 제목인 '때에 임하여 짓는 노래', '의미가 통하지 않는 노래', '남겨진 이의 노래' '달을 읊는 노래' '답하는 노래' 작가 아직 확실치 않은 노래' 도 작품에 여운을 더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의 진실이 살짝 유치했다는 점이랄까. 일본만화를 연상시키는 진실은 옥의 티다. 또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등장하는 장소나 책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자세했다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관심이 많거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묘사도 있어서 책에 완전히 몰입하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낮에 손에 잡히지 않는 달을 쫓아, 진실을 쫓아 시작된 여행. 진실은 밝혀졌고 여행도 끝이 났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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