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의 지름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보면 엄청난 속도와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 끌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천천히, 쉬엄쉬엄 편안하게 읽을만한 이야기가 끌릴 때도 있다. 요즘처럼 햇빛이 간지럽고 기분이 붕붕 뜨는 때에는 특히. 그럴 때는 동화책이나 그림이 많은 책, 혹은 연작소설집을 읽으면 좋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를 품고 편안하게 누워 배 위에 올려놓고 읽기 시작한 [유코의 지름길].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자. 몇 년 전부터 일본 작가들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나 또한 좋아하는 작가가 하나 둘 생겼고, 그 작가의 작품이라면 앞뒤 살피지 않고 일단 구입부터 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출간되는 작품 중에는 장편소설의 수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유난히 연작소설집의 수가 증가한 것 같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인 걸까. 주인공의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일단 주어는 '나', 생활 속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편안하게, 혹은 코믹하게 그리는 이야기들은 언뜻 보면 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 듯도 하다. 실제로 작가가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그런 이야기들을 자주 접하다보니 담백함과 편안함이 장점이었던 작품들이 빛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신선하고 아기자기하게 느꼈던 분위기를 '에이, 또 요런 거야? 생활이야기라고 해도 뭔가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그릴 수는 없을까?'라며 심드렁하게 생각해버린다. 물론 작가들이 어떤 한 작품을 내놓기 위해 얼마나 머리털 빠지게 고민할 지 짐작은 가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완벽한, 최고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뭐랄까, 새로운 소재와 구성을 간직한 작품의 소개가 절실해진 때라고 할까. 

[유코의 지름길]의 내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도 나이도, 심지어 이름도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나'가 서양 골동품 전문점 후라코코에서 아르바이를 하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느긋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매일매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상상만으로도 따스한 매력이 넘칠 것 같지만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다. 표지그림으로 인해 정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보다 장난감병정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등장인물들로 아기자기한 맛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문체가 담백하다 못해 넘쳐흘러서 건조함까지 느껴진다. 과연 원서에서도 이런 문체로 쓰여졌을지 그 어떤 때보다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졌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수상식장에서 'あいまいな日本の私(애매한 일본의 나)’ 라는 제목으로 수상 연설을 한 오에 겐자부로. 그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데다 일본의 순문학을 열어갈 이야기라 해서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응, 하기는 나오키상이라든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한 작품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이 기다림이 기쁨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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