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보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요괴 이야기에는 귀가 솔깃해진다. 귀신이나 유령이라는 단어에서는 어둠의 기운밖에 느끼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일본 요괴라고 하면 악한 기운보다 아기자기한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일본 요괴 중에도 [음양사]에 등장하는 귀신들처럼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도 있겠다. 하지만 [음양사]를 제외하고 내가 읽었던 작품들에 등장한 요괴들은 인간들 곁에 머물며 주인을 호위하거나([샤바케]), 여기에 등장하는 호루모 귀신들처럼 귀여운(?)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호루모 6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작품은 '호루모'라는 기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호루모는 일본 교토에서 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경기로 교토대학, 리쓰메이칸대학, 교토산업대학, 류코쿠대학의 4개 호루모 동아리에서 10명이 각각 귀신 100마리를 부려 치르는 경기를 가리킨다. 호루모 귀신은 몸길이 약 20센티미터로 머리가 약간 크고 얼굴 한 가운데에 꼭 오므린 채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는데 적의 공격을 받으면 이 주둥이가 점점 들어간다. 완전히 들어가면 '뾰로'라는 소리를 내며 소멸하지만 그 전에 건포도를 넣어주면 다시 주둥이가 튀어나오게 된다. 

마키메 마나부의 [가모가와 호루모]의 속편인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단순한 요괴 이야기가 아닌 호루모 귀신들을 부리는 인물들의 아기자기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 총 6편의 사랑연작소설로 호루모 경기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대학생들의 청춘과 사랑의 고뇌를 가벼운 듯 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호루모 동아리를 통해 만난 여자들의 우정,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할 때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을 패러디한 이야기, 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만난 동아리 사람들의 에피소드 등 소재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다!'라고 꼽을 수 있는 이야기는 <나무 궤 사랑>. 오다 노부나가의 시대에 살고 있는 나베마루와 툭하면 눈물을 울리는 다마미의 시대를 뛰어넘은 풋풋한 사랑이야기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무척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물론 단순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가슴의 알싸함은 책을 껴안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당신을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꿈 세상에 있는 것입니까? 꿈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언젠가는 당신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당신이 알아볼 수 있게 표식을 달고 나타나겠습니다. 아즈치 성에서 바라보는 비와코는 아름답습니다. 당신께 꼭 한 번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비와코 표식과 함께 반드시 당신을 찾을 것입니다. 부디 당신도 나를 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p370  
     

교토는 794년부터 약 1,000여년의 시간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 문화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다. 천년의 고도라 불리는 교토. 그 교토에서 벌어지는 호루모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  달콥쌉싸름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호루모라는 판타지가 맛있게 버무려진 유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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