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요나라는, 요즘에야 헤어질 때 인사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어떤 사람과의 인연을 끊을 때 쓰는 말이다. 일본드라마에서 헤어지는 두 연인이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묵직해오는 것이 그 울림마저 무거운 말. 그래서 나는 주로 '바이바이'를 쓴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안타깝고 무섭게 느껴지는 그 사요나라가 두 번이나 쓰였다!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요시다 슈이치. 그 말을 듣고 긴장하면서 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참, 이런 책은 읽기도 힘들고 내 안에서 뭔가를 뱉어내기도 버겁다. 결국 노트북 앞에서 몇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야기는 가쓰라가와 계곡에 있는 공동주택단지에서 한 남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범인이 아이의 엄마인 사토미로 밝혀지면서 경찰과 취재진들이 몰려들고, 그 와중에 사토미의 옆집에 살던 오자키 슌스케와 그의 아내 가나코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견출판사의 기자 와타나베는 운전기사로부터 우연히 오자키 슌스케와 같이 야구부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선배의 조언으로 그들이 집단강간의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체포된 사토미로부터 오자키와 내연관계였다는 증언이 터지고 그 증언을 계기로 오자키와 가나코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작가가 설정한 아이의 죽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아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어느덧 슬프고 안타까운 또 하나의 사건, 오자키와 가나코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다른 여성분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남성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하게 되는 것조차 최대한 피하는 쪽이다. 그런데 집단폭행이라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책의 소재로 만나게 되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일단은 여자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순식간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오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후 가나코, 아니 나쓰미의 인생은 분명 밖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잊었다고,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도 사건의 기억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고 , 자신이 어째서 그런 곳까지 따라갔는지 평생을 자책하며 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점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그녀를 그 누구도 진심으로 감싸안으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건이 있은 후 계속되는 가정불화, 부모님의 이혼, 과거를 알게 된 남자들의 치졸함은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결국 깊은 상처를 입은 나쓰미는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오자키를 선택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오자키를 원망하며 그를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생활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앞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었던 사람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아름답다기보다 슬픈 사랑. 오자키를 용서하게 되면 그 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던 나쓰미는 -사요나라-를 남긴 채 떠나간다. 

책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이어도 그것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해자인 여자는 죄인이 되고, 가해자인 남자는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간단히 잊어버릴 수 있는 일. '어째 이래'라며 화가 나지만 그런 사회문제보다는 두 남녀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정말, '사요나라'에는 못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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