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17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덱스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그는 오로지 나쁜 사람만 죽인다'라는 문구를 보면 깜짝 놀란다. '그래도 살인범은 살인범이잖아! '라면서. 맞다. 그는 나쁜 사람만 죽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연쇄살인범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가 잡힌다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법으로 심판해야지' 하겠지만, 글쎄, 그게 100% 진심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 나쁜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를 입는다면 우린 과연 그 때도 '법으로 심판해야지'라며 굳건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존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정말 대책없고 무서운 주인공이지만 '덱스터'는 어쨌든 소설 속 사람이니까. 그가 그의 어둠을 어떻게 다스리나 우리는 그저 살짝 엿보면 된다. 

출판사 비채에서 출간된 [본즈]시리즈처럼, 나는 덱스터도 미국드라마를 통해 먼저 알았다. 사실 드라마 <덱스터> 시리즈는 오프닝부터 살짝 자극적이다. 허연 화면을 배경으로 덱스터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작은 인형이 턱 놓여있기도 하고 오렌지를 자르는 칼은 번쩍 빛나며 과즙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우엑'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 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보면서 내 동생은 한 마디씩 한다. 누나는 왜 이런 책을 좋아하냐고. 하지만 나는 특별히 '이런' 책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허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는 것 뿐이다. 실제로 나는 누가 옆에서 밥먹다 코피만 흘려도 더 이상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약한(?) 사람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것뿐이라고 스스로 박박 우기고 있는 중. 

덱스터는 어릴 적 겪은 부모의 죽음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검은 승객'이라 불리는 내면의 자아는 그런 덱스터에게 끊임없이 살의를 분출시킬 것을 종용하는데, 양아버지 해리를 만나기 전까지 덱스터 혼자서는 '검은 승객'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경찰이었던 양아버지 해리는 덱스터의 검은 본성을 알아보고 들키지 않게, 나쁜 사람들만 죽이는 방법을 전수해준다. 그 후 시작된 덱스터의 나쁜 사람들에 대한 응징.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다가온다. 늘 덱스터의 안에서 그와 함께 했던 '검은 승객'이 어느 날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여느 때처럼 나쁜 사람 알렉산더 맥컬리를 응징한 다음 날, 불에 탄 시체 두 구가 발견된다. 몸은 불에 타고 잘려진 머리 부분에는 황소 동상이 자리잡은 시체. 그 현장을 접한 덱스터 안의 '검은 승객'은 깜짝 놀라며 기운을 잃고 응답하지 않게 된다. 어떻게든 '검은 승객'을 다시 깨워보려고 하지만 덱스터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내 안의 '검은 승객'은 대체 뭐였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을 고민하는 사이에도 살인사건은 연이어 일어난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MLK'글자를 토대로 혼자 조사한 결과 고대 신앙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 챈 덱스터를, 그 누군가가 미행하고 위협한다. 

덱스터 시리즈에서는 덱스터 외의 인물들은 모두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는다. 덱스터 혼자 위기를 맞고, 해결하고, 자학하고, 고민하며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그 모습이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기 보다는 재미있다. 특히 덱스터가 검은 승객을 잃고 혼자 자학하며 시니컬하게 내뱉는 대사나, 자신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때  미국드라마 속의 덱스터의 멍한 표정이나 미소 등이 상황과 겹쳐지면서 재미가 배가 된다고 할까. 덱스터가 주인공이므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없이 이 책은 존재가치를 잃는다. 

한편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남편의 폭행으로 이혼한 후 두 아이 애스터와 코디를 키우며 살아가는 리타와 덱스터의 결혼이 진행된다. 이번 편에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애스터와 코디, 두 아이들이었다.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두운 유아기를 보냈던 아이들에게는 덱스터의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코디는 덱스터의 '검은 승객'을 알아차리고 나쁜 사람들의 검은 날개까지 알아볼 수 있다. 코디에게도 '검은 승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덱스터 시리즈는 덱스터를 물론 빼놓을 수 없겠지만, 덱스터가 코디에게 가업(?) 을 어떻게 전수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질 듯 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칼을 들고 미소짓는 아이는, 역시 무섭다. 흑.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그를 멀리할 수 없는 이유는 역시 '나쁜 사람들'만 응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어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느냐, 그 어둠을 다른 사람 눈에 보이게 하느냐 등이 문제가 될 뿐. 덱스터는 우리들의 어두운 부분이 만들어놓은 집합체같은 존재다. 그래서 멀리하고 싶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존재. 

책을 읽다보면 번역이 영 깔끔하지 않아서 읽는 맛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번역 자체도 잘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덱스터의 시니컬함과 자학성향을 잘 살렸다고 할까나. 언제나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덱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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