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가 생각난다. 대학교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영화관련 수업에서 선생님이 유명한 감독의 유명작품이라며 보여주셨었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던 비둘기가 완전히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는데 이 책의 표지를 보니 영화를 보던 때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상상과는 달리 '새'에 관한 작품이 아니다.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있다는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과 유명한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 관한 이야기다.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붉은 글씨로 적혀있는 부제가 오싹하다. 시가 가게에서 일하던 아름다운 아가씨 메리 로저스, 그녀가 살해당한다. 발견된 사체는 잔인하게 훼손되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하다. 메트로폴리스의 상급치안관이자 올드 헤이스로 불리는 제이컵 헤이스가 사건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어떤 증거도 잡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한편, 콜트 가의 막내 존이 편집자를 살해한 혐의로, 갱단의 리더 타미는 아내와 딸, 그리고 아내의 전 애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툼스 교도소에 수감된다. 세 건의 살인이 여기저기서 짜맞추어지고 젊고 천재적인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유령처럼 등장하는 가운데 드디어 사건 발생 5년여 뒤 진실이 밝혀진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지만 그저 추리소설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물론 기존의 추리소설이 갖춘 긴장감과 속도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올드 헤이스는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그보다는 그의 딸 올가가 더 탐정같이 느껴지는 데다 어쩐지 계속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고있는 듯한, 약간 느린 전개에 조바심이 인다. 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를 내세운만큼 그 과정이, 문장들이 중요한 책이다. 그가 외우는 시,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문장 하나하나와 어우러져 더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에드거 앨런 포는 그의 작품 <검은고양이>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가장 검은 새]에는 그의 다른 작품들이 여럿 소개되고 있다.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 <황금벌레> 그리고 <마리 로제 미스터리>등인데 <마리 로제 미스터리>는 작품 안에서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을 토대로 쓰여졌다고 하여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더욱 깊은 어둠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가장 검은 새] 에서 에드거 앨런 포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허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올드 헤이스의 딸 올가가 빠져들만큼 지적인 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만큼은 자신을 지탱해 줄 여성이 없으면 결코 살아가지 못하는 한심스러울 정도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과연 그 혼자만의 모습이었을까. 소년들이 갱단에 가입하여 마약에 취하거나 보스가 되고, 소녀들은 핫콘걸이 되어 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다. 세기말이라고도 불렸던 19세기의 뉴욕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 죽음의 비밀을 짐작했을 에드거 앨런 포는 제정신으로 현실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여렸던 것이 아닐까.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작품을 써냈다고 칭송받을 정도의 논리력과 감수성을 지녔을 그였을테니 그의 광기는 시대의 불운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 그는 가장 검은 새로 이름붙일 수 있는 어두운 자아에 덮쳐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19세기든 현재든 워낙에 '뉴욕'이라는 도시를 좋아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시처럼 다가와 어쩐지 읽는 맛이 났다. 느린 전개와 스릴이 부족한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고, 그 중에서 결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갑자기 '헉'소리가 나게 만드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결말.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은 약간 시시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작가가 처리한 결말로 인해 메리 로저스 사건의 시시함까지 덮어지는 기분이다. 소제목 하나하나마저 깊이 음미하게 되는 극적인 소설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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