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새비지가든. 영어에 약한 나로서는 그저 단어의 느낌이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아마도 표지가 주는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느낌에 지레짐작을 해버린 탓도 있겠다. 뭔가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뜻을 가진 단어일 것이라 생각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이런, 내가 상상하던 것과 정반대다. 야만적인, 난폭한. 그럼 새비지가든은 난폭하거나 야만적인 정원이 되는 건가. 문득 새비지가든이란 그룹이 생각난다. 그럼 그들은 난폭한 가수들? 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 새 나는 책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주제를 추천받은 애덤은 여름방학동안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도치 저택을 찾게 된다. 15세기의 부유한 영주였던 도치가 젊은 아내였던 플로라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정원.  그러나 아름다운 정원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내 플로라를 모델로 한 여신 조각상은 정숙하다기보다는 유혹적이고 정원 여기저기에 세워진 조각상들 또한 애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듯 하다. 한편 도치 저택의 여사에게도 아픔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쟁이 끝나기 전 큰아들이 독일군의 총에 맞아 숨진 일이었다. 우연히 단테의 [신곡]을 접하게 된 애덤은 정원과 저택에 숨겨진 비밀을 눈치채게 되고 위기 상황까지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흔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비밀의 정원과 어울리며 커다란 회오리도 휘몰아친다.  400년 전의 사건, 13년 전 일어난 사건들은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이면서 '가족관계'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인다. 가장 가깝지만 때로는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사이, 가족.  가장 친밀해야 할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죄의 무게는 깊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채 어둠의 농도만 짙어질 뿐이다. 그리고 숨겨져 있는 그 비밀을 푼다는 것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세상에 숨기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없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 같다. 그것은 애덤의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도치 여사다. 가슴 속에 온갖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채 저택을 지키고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는 비밀 앞에 당당히 마주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얻게 된 노련함으로 결국은 사건의 전체흐름을 주도하는 도치여사. 그녀는 사랑 앞에 정열적이었고 진실 앞에 솔직한 모습을 보이면서 저택과 정원에 감도는 저주의 기운을 몰아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신화와 단테의 신곡을 알맞게 버무려 이야기를 구성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애덤과 그의 형 해리 사이에 보이는 재치있는 행동과 말들은 긴장감 있는 사건들 속에서 간간히 미소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리게 만든 책, 언젠가는 이탈리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단테의 [신곡]은 꼭 한 번 읽어둬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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