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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책을 읽자마자 리뷰를 남기는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쓱쓱 닦고 오랜만에 엄마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탕 속에 둥둥 떠서 이야기도 나누었고 엄마의 너른 등을 두 손으로 힘차게 밀어드렸으며 보통 때는 엄마가 하시던 수건 빨래도 오늘은 내가 했다. 다녀와서는 같이 저녁 준비를 했고 그토록 싫어하던 설거지도 자진해서 끝냈다. 그리고 지금은. 일찍 잠자리에 드신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드렸다.
목욕탕에 함께 가는 것, 같이 저녁 준비를 하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모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었다. 시원하게 몸 좀 풀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목욕탕에 가기보다는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고 저녁 준비는 당연히 엄마의 할 일이라고 여겼으며 설거지는 힘든 하루를 끝마치고 온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많은 집안일을 나는 엄마의 딸이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책은 읽어서 무엇 하는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나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p19)-
생신을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이 서울로 오시던 중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한 평생을 늘 엄마보다 앞서 걸었던 아버지. 그 날도 그는 여느 때처럼 엄마보다 앞서 걸었고 엄마가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서울역에서 두 정거장이나 지나온 다음이었다. 엄마의 자식들은, 엄마를 '잊고' 지냈던 그들은 그제서야 한데 모여 엄마를 찾아 헤맨다.
엄마는 잃어버림을 당하기 전에 이미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잊혀지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을지. 엄마조차 모르고 지나가버린 뇌졸증이었기에 자식들은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고, 자신의 아픔에 빠져있었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떡을 3년간 냉장고에 방치해 둔 '너'는, 그녀를 다시는 추운 방에 누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형철이는, 나 죽으면 먹으면서 생각하라고 챙겨준 감나무를 귀찮게만 여겼던 막내는 엄마의 자랑스런 자식들이었지만 품안을 떠나버린 그 때 타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그제서야 남편과 자식들은 엄마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 것을 느낀다. 엄마가 해주던 밥, 엄마가 일하던 모습, 서울에 자리잡은 큰 아들에게 여동생을 데려다주며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삭이던 목소리,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호박덩이와 온갖 나물들.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애써 부탁하지 않아도, 간청하지 않아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처럼 어느 새 눈을 들어 바라보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
나에게도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엄마로 자리잡았고, 엄마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문구에서처럼 나는 엄마에 대해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고, 찾고 싶은 친구가 있을 정도로 즐거웠던 학창시절이 있었으며 아빠를 만나 달콤하게 연애했던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했었음을 나는 여전히 '잊고' 산다. 나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면서도 내 욕심과 가족의 이기심 안에서 가장 큰 고생과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로 잊으려 했었음을 고백한다.
'엄마'라는 단어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고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읽고 싶어 손에 들인 책이었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잖아. 그러니 슬픈 이야기는 그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이것이 슬픈 이야기인가, 작품 속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엄마'라는, 어쩌면 문학 작품 안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을 그 사람을 소재로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나는 누군가에게, 혹은 전지전능한 신에게라도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엄마를 부탁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세상이 허락하는 날까지 돌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