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나이를 먹을수록 선명하게 깨닫는다. 대학에 입학하면 행복한 삶만 이어질 거라 믿었지만, 고민의 크기는 커지고 깊어지기만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내가 원하던 일을 이루고나면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품었던 희망은 그러나 또다시 여러 종류의 고민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시간이 흐를수록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마음은 자꾸 움츠러들게 되는 걸까. 때로 우리네 인생은 목적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주인공 '나'를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건조한 문체, 자신을 숨기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속마음을 털어놓는 '나'. 대학을 휴학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에 대한 인상은 '공허함'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와 사랑에 대한 아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느끼는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흔들릴 뿐이다. 그녀의 불안정한 인생은 현실이 아니라 '꿈'으로 표현되고, 결국 진짜가 아닌 '짝퉁' 인생이 된다. 그런 '나'의 옆에는 두 명의 여자친구와 한 명의 남자친구, 그리고 정체불명의 K가 있다. 사랑에 상처받고 모르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지만 결국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B 와 이미테이션을 좋아하는 R,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 Y. 모두 방황하는 인생 속에 한걸음씩 내딛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여느 작품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 동안 읽어왔던 작품들이 역시 여성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으나, 어쩐지 얇은 유리막에 둘러싸인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마이 짝퉁 라이프] 는 뭐랄까..좀 더 현실적,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달콤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현실을 부정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도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짝퉁사랑을 하는 B, 짝퉁물건을 걸치고 다니는 R, 그리고 짝퉁에 속아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나'.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이름 없이' 살고있을 우리들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 수많은 짝퉁과 거짓과 허위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고 험난한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중반까지 흥미롭고 무미건조하지만 마음에 드는 성향을 이어가던 작품은, 그러나 중반을 넘어가면서 풀썩 힘을 잃는 것 같기도 하다. 결말 또한 제대로 정돈되지 않고 서둘러 끝을 맺어버린 느낌이 들지만, 작가의 역량을 감안해 볼 때 지금 저자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글을 썼고, 등단했고, '오늘의 작가상'까지 수상했으며 꽤 재미있게 읽게 해주었으니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나는 짝퉁 인생 따위는 살고 싶지 않다. 무미건조한 회색빛을 발하던 다시 사랑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내 세상을 활기차고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갈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혹은 나 자신으로 인한 것이든 항상 진실된 삶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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