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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긋나긋 워킹
최재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소개팅은 고사하고 미팅 한 번 '못하고' 대학생활을 끝마쳤다. '안하고'가 아닌 '못하고'였다. 몽상병이 심한 나에게 그 불치병을 심어준 책의 영향으로 나는 굳세게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다. 그 '운명적인 사랑'에는 인위적인 만남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한 번 만난 것만으로도 전기가 파박! 튀거나, 인연의 힘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사랑. 그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그것도 이제 지나간 이야기다. 지금 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대학생활을 통틀어 미팅 한 번, 소개팅 한 번 못해본 것이 작은 한(?)으로 남아, 지금에서야 소개팅을 꿈꾸는 20대 중반의 꽃다운(?) 처자이다.
요즘들어 시집가지 못한 처녀, 일명 노처녀의 삶과 사랑을 다루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네들의 삶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건만, 어째서 세상은 그네들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종종 이야기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일까. 내 친구 중 한 명은 아직 노처녀가 아님에도 그것조차 남녀차별이니, 여성의 인권 무시니 하며 무척 흥분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책이든 드라마든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는 수요가 필요하다. 수지가 맞지 않으면 만들어낸들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 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 여자들의 희망과 사랑을 세상이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랑은, 행복은 포기할 수 없다고 다짐하는 수많은 낭만적인 여성들의 생각을 말이다.
그 낭만적인 사랑을 나는 인위적이라 생각해 무시했던 소개팅으로 작가는 풀어냈다. 자신의 아는 후배가, 주위를 둘러싼 아는 사람들의 인연이 '소개팅'으로 만들어져 있음에도 '한 끗 부족한 인연'으로 치부해버리는 그들의 생각이 작가는 이해되지 않았던 듯 하다. '왜 하필 그날, 왜 하필 그 때, 왜 하필 거기에, 왜 하필 그 사람과, 왜 하필 그런 짓을'. 모든 만남에 우연은 없다고 믿어왔던 나조차 의식적으로 배제해왔던 소개팅의 연결고리를 작가는 섬세하게 풀어냈다. -결국 만남에서 부족한 '한 끗'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인연이라는 만남의 '속성'에 있는 게 아니라, 어차피 사람이 만든 인위적 인연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인연의 가치도, 마주앉은 사람의 가치도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더라는 그런 얘깁니다-
[나긋나긋 워킹]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어떤 여자 임해진과 오다기리 조를 닮은 어떤 남자 윤남욱이 만나 소개팅을 했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고, 만남을 가지며 마음 속에 남아있는 각자의 아픔을 털어내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작품에 등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의 실명이 그대로 쓰여 마치 친구의 비밀일기장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든 생각은 '나도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였다. 소개팅이면 어떤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은, 어쩌면 거짓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을. 우울한 생각은 떨치고, 마음 속 아픔은 한바탕 울고 소리쳤으니 잘 다독여 묻어두겠다. 밝고 예쁜 사랑으로 언젠가 나도 다시 나긋나긋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