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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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 예술작품들은 많고도 많지만, 나는 그 중에서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 가장 좋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를 읽을 때까지 나는 베르메르라는 화가와 이 그림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 소설을 다 읽자마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 직접 보고 싶어졌고, 베르메르라는 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 후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소재로 하거나 베르메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무조건 찾아서 읽었지만,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36점의 그림을 남겼으나 그의 고향인 델프트에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고, 마지막 36번째 작품은 도난당한 후 행방조차 모른다는 베르메르의 작품들. 그의 그림들을 통해 심도있고 낯선 세상 속으로 다녀왔다.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원래 천성이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분석하거나 연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책이든 그림이든 보고 읽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가 아무리 들여다보고 연구해도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의 작품과 접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고 감동해주면 충분히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천천히 읽고 나니 그림, 혹은 시나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정보들을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시나 소설도) 우리를 다른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창구가 되어준다. 

이 책에 소개된 베르메르의 그림들 또한 그러하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다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그림인 <장교와 웃는 소녀>를 보자. 챙이 크고 넓은 모자를 쓴 장교가 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그림은 표지에도 등장한 작품인데, 여기에서는 모자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 당시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비버 모자가 큰 유행이었는데, 토종 비버의 털로 모자에 필요한 펠트를 계속 만들어내다보니, 그 개체수가 급감하게 된다. 16세기 말이 되면서 비버 펠트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 캐나다가 대두되었고, 캐나다 비버 펠트가 시장에 소량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610년대에는 비버 펠트 모자의 가격이 양모 모자보다 10배 가까이 올라 사람들을 비버 모자를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7점의 그림을 통해 네덜란드의 당시 사회 풍조와 시장의 모습, 국제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이다. 당시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중국이란 나라는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었다. 저자 또한 중국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므로 중국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 더 네덜란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기있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와 중국에 관한 이야기가 균형있게 실려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고 느끼면 돼!'라고만 생각해서 얼핏 보고 지나쳤던 그림들을 통해 많은 사실과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에 대해서도 더욱 애정이 생기는 것만 같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르쳐 준 책. 사물을 보는 깊이 있는 눈까지 배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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