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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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스터리라는 말에 끌렸던 것이 사실이다. 날씨는 덥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이 때, 미스터리 소설은 찬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보다도 더위를 잊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여타의 미스터리 도서와는 다른 독특한 책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독특한 점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말 독특하다. 그리고 난해하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 북태평양의 키스카섬에 군견 4마리를 남겨둔 채 주둔해있던 일본군이 떠난다. 키타, 마사오, 마사루, 그리고 미군 포로의 개였던 익스플로전. 인간들이 모두 사라진 땅에서 마사루를 제외한 세 마리의 개들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어느 날 미군과 만난 마사루는 그들을 지뢰밭으로 유도해 함께 폭사한다.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은 미국 본토로 향하는 배에 태워지지만, 배멀미가 심했던 키타만은 여정을 함께하지 못한 채 알래스카에 남겨지게 되고 얼마 후 마사오와 익스플로전 사이에서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이후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에서 그들 자손의 자손의 자손들의 역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읽는 책의 대부분이 '사람'이 주인공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개'가 인간보다 우위를 점한다. 지금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쓰여왔던 세계의 역사가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의 새끼들을 중심으로 재탄생되었다. 인간과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개의 족보(?)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반면, 인간에 대한 설명에는 무성의하다. 작품 초반에 등장한 대주교라는 노인과, 그가 납치한 일본 야쿠자의 딸인 통통한 소녀의 이야기가 개들의 역사 사이사이에 등장하지만, 작품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체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품의 주인공인 벨카 또한 개들의 역사를 한참 따라간 뒤에야 등장한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알력 다툼이 거세지는 와중,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그 후 개를 대상으로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고, 1960년 8월 19일에는 벨카라는 이름의 수캐와 스트렐카라는 이름의 암캐를 함께 태워 스푸트니크 5호를 발사했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지만, 그들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이다. 그들이 우주에 있을 때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의 자손들은 이따금 그들의 시선을 느끼고 달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충만한 힘을 느끼기도 한다. 

군견들이 투입된 인간들의 전쟁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일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근대사를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본,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성보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인식해왔던 나에게는 약간 어려운 작품이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문체에 차가운 얼음이 생각나는 서늘함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집어들었다가 의외로 머리를 감싸쥐고 살짝 괴로워하며 읽었지만, 읽고 읽고 읽어볼수록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훈련받은 개들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짖지 않는다. 오직 조용히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온힘을 쏟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바른 현상일까. 동물에게 짖는 기능이 있다면 짖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짖지 않고 인간의 의해 훈련받은 개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본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벨카도 짖지 않는다. 벨카가, 다른 개들이, 혹은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짖을 때를 함께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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