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내가 관심을 갖는 스포츠는 '축구' 하나다. 그것도 월드컵같은 큰 대회가 있을 때만 '와와' 거리며 쫓아다니는 변덕쟁이 팬일 뿐이다. 올림픽이 열리면 가슴 두근거리면서 시합을 지켜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뿐, 어떤 한 종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야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저 멀리 있다. 아마도 그것은 어린 시절 기억의 영향이 큰 듯 하다. 뜨거운 햇빛, 시끄러운 고함소리, 보이는 것은 운동장이 아니라 아이인 내 눈에 커다랗게만 보이는 어른들의 넓은 등이 고작이었다. 야구, 그것은 저 먼 우주의 이름모를 행성처럼 내게는 낯선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야구를 하는 소년들의 이 이야기를 읽고 '대체 야구가 뭐야'라며 야구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묻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야구 이야기만 꺼낼라치면 '난 야구 같은 거 잘 몰라'하며 도리질을 쳤었는데 지금은 야구가 도대체 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다.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몸이 근질근질하다. 나는 야구를 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야구를 하는 모습이 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언가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 아마도 그것일 게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 나에게 이런 달뜬 마음을 갖게 한 두 사람이 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지만 천재적인 투수 하라다 다쿠미와 푸근하고 너그러운 그의 포수 나가쿠라 고. 두 사람은 배터리다. 야구에서 짝을 이루어 경기를 하는 투수와 포수. 배터리. 도시에서 전학 온 다쿠미의 공은 어른이 인정할 정도의 엄청난 힘과 속도를 자랑한다. 그런 다쿠미의 공을 한 번 받기 시작한 고는 희열에, 정열에, 다쿠미의 그 오만한 자신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의 포수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야구 자체에 세상의 중심을 두고 자신의 던지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는 다쿠미와, '다쿠미의 공'을 중심에 둔 고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다쿠미의 성격도 그들의 갈등에 한 몫한다. 하지만 소년들은 변화하는 법! 다쿠미는 고로 인해, 고는 다쿠미로 인해, 소년들은 성장한다. 

야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떤 운동에나 협동심은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을 내세우기보다 팀 전체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스포츠라고 생각했다. 야구 또한 단순히 던지고 치고 받는 행위 자체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협동하면서 진실된 마음을 배우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쿠미에게 있어 야구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유' 그 자체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마음 따뜻한 고는 그런 다쿠미와 단순한 친구는 될 수 없지만 그의 공을 받는 포수의 자리는 절대로 넘겨줄 수 없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다른 이에게, 주변 사물에,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무관심했던 다쿠미의 가슴을 변화의 바람이 뚫고 지나간다. 고는 다쿠미와 다쿠미의 공으로 인해 번뇌하고 방황하면서 어엿한 소년으로 성장해간다. 

 나는 처음에 '배터리'라는 제목을 보고 어째서 제목이 '배터리'인지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구 용어에 관해서는 무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일상에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처음 '배터리'의 진짜 의미를 알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처음 생각했던 그 배터리의 의미도 들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자기가 가진 힘으로 다른 것을 빛나게 해주는 '생활용품'배터리. 서로에게 고민과 갈등을 안겨주지만, 변화와 성장을 안겨준 '두 명의' 배터리. 모두 멋진 배터리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든 또 다른 이유는 독특한 색을 띤 등장인물이 여럿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만하고 거만하지만 의외로 순수한 다쿠미, 푸근하고 너그럽지만 날카로운 고, 약한 몸이라 늘 힘드지만 내면에 강한 힘을 갖고 있는 다쿠미의 동생 세하, 장난스럽고 귀여운 친구들 사와구치와 히가시다니, 평범한 듯 보이지만 뛰어난 전략가의 기질을 갖춘 주장 가이온지, 우직하고 성실한 가도와키와 늘 실실 웃으며 본심을 숨기지만 의외로 복잡한 미즈가키까지, 이 작품 안에는 하나의 말로 포장할 수 없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 명 한 명 모두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빛나는 미래, 그들의 고민과 웃음은 끝나지 않은 야구경기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이게 한다. 이 작품의 결말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비록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렇게 미치도록 무언가에 빠져들 수 있는 그들이. 같은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자신들의 열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인생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게 아닐까 싶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일,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 

잘 모르는 야구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6권이라는 분량이지만 감동적인 이야기에 빠져 6권 이상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음 속 잊고 있던 정열과 희망을 되살아나게 해 준 이야기, 사랑스러운 소년들의 이야기가 오늘밤 나를 잠 못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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