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1 - 안드로메다 하이츠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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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은 여느 일본 작가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녀가 창조해내는 세계는 쿨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 너무 매정해서 읽는 이의 마음을 허공에 붕 뜬 상태로 만들어버리지도 않고, 너무 뜨거워서 질척거리는 마음을 한동안 안고 살아가게 하지도 않는다. 딱 정도를 걷고 있는 느낌이랄까. 읽고 나서 탁 덮은 후 ‘음, 좋았어’하고 끝내버릴 수 있는 상쾌한 박하사탕 같은 느낌이 참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세 권이나 되는 분량은 역시 걱정스럽다. 그녀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을 그토록 장황하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인지, 그녀의 긴 이야기에 질리지 않고 끝까지 귀 기울일 수 있을지,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염려하면서 책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전 3권인 [왕국]을 아직 1권 밖에 읽지 않아 전체적인 감상을 쓰는 것은 무리겠지만, 1권을 읽고 느낀 것은 역시 ‘아, 좋다’였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글은 한층 더 서정적이다. 도시의 생활을 그리는 다른 일본소설에서 느껴지는 뿌연 구름 같은 삭막함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청아한 자연의 공기를 맡을 수 있다. 깊은 산 속에서 할머니와 둘이 생활하면서 차를 만들어 파는 시즈쿠이시. 자연을 벗하며 살아온 그녀 자체가 또 하나의 자연이다. 사람들에 의해 자연이 균형을 잃어가면서 결국 할머니와 산을 내려온 시즈쿠이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식물 선인장과 도시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쓸쓸하고 외로웠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낸 끝에서 눈이 잘 보이지 않지만 신비한 능력을 가진 ‘가에데’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신이치로’를 만난다.

시즈쿠이시는 어쩌면 우리 마음 속에 숨어있는 작은 ‘우리’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내어 함께 있고 싶어하고,  마음이 맞는다고 느끼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한다. 특히 많은 상처를 받고, 쓸쓸함과 외로움을 더 심하게 느끼게 되는 이 도시에서 그런 사람을 발견해내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한 사람의 위로와 체온이 때로는 많은 위로가 된다. 시즈쿠이시에게는 마음을 여유롭게 해주는 ‘선인장’이 있었다. 자연과 할머니와 소통할 수 있는 매체.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람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순수하고 독특한 시즈쿠이시와, 함께 해서 좋은 사람을 발견한 그녀의 생활이 못견디게 부러워진다.

겨우 100페이지가 조금 넘어가는 얇은 분량이라 처음에는 '그리 굉장한 이야기겠어?' 하며 살짝 얕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에데와 선인장이 시즈쿠이시에게 위로가 되었듯이, 이 책 또한 서정성과 따뜻함으로 나를 위로한다. 뒤에 남겨둔 왕국 2권과 3권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나를 위로해줄 것인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 읽은 후 한참이나 쓰다듬고 싶어지는 여운이 강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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