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 오디세이
쓰지 유미 지음, 이희재 옮김 / 끌레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번역가의 길을 꿈꾼다. 외국의 언어가 내 손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될 때의 기분이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전공한 나도 대학 때 짧은 분량의 원고를 두어번 번역한 적도 있었고, 한창 일본어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는 일본 소설책을 원서 그대로 내 손으로 번역하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때문에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번역가들의 고충을 내가 조금은 이해한다고 하면 너무 자만하는 것이 될까. 

세상이 좁아진만큼 내 책장도 이제 한국에서 태어난 책들 뿐만이 아니라,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도착하여 새롭게 탄생한 책들로 북적북적하다. 가끔 오탈자를 발견하거나, 문맥이 맞지 않아 읽기 힘든 책과 만날 때마다 '번역이 너무 이상해'라며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지,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번역을 했는가를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책을 홍보하거나 선택할 때 번역가보다는 저자에게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번역의 역사라니. 나는 순간 멍해진 기분이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지속되어 왔을 경우, 당연히 그 쌓인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번역사 오디세이] 는 번역의 탄생부터 중흥기를 거쳐 르네상스까지, 번역이 어떻게 생겨나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고대 카르타고에도 번역가 계급이 있었다거나, 그리스 시대의 문헌들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그 후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등 각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번역의 진화(?)해 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각 장마다 주요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프랑스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앙드레 지드도 번역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국가는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시간의 일부를 외국 걸작의 번역에 쏟아 붓도록 강요해도 무방하다"(p177) 라는 부분은  외국 작품을 번역하다보면 자국어에 대한 인식 또한 깊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는 " 몇 페이지 안 되는 분량인데 하루에 너덧 시간씩 꼬박 3주가 걸렸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난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p179) 를 통해 번역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번역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적어놓은 이방의 글을 그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는 것? 아니면 저자의 글을 우리의 입맛에 맞게 맛깔나게 고쳐내는 것? 쉽게 결론지을 수 없지만, 번역이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익숙하지 않은 인명들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를 내용들이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얻은 것 같다. 번역가의 길을 꿈꾸는 사람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을 멋진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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