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시절 접했던 세계명작은, 참 재미가 없었다. '어째서 세계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나에게는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주지 못하는 것일까'가 지금까지 여러 책을 접해온 나에게 가장 큰 의문이었던 것 같다. 한 번 새겨진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인지 그 동안 세계명작에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또 다시 실망하게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는 세계명작의 그 고매한 세계를 내가 이해할 수 없을까봐 걱정스러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계명작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동경의 대상이므로. 이번에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나온 세계문학 시리즈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세계명작에 대한 도전의식(?)을 일깨웠는데, 그 중 첫 번째로 택한 작품이 바로 레프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이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로 처음 만났다. 어린시절 아동용으로 나온 그 책을 읽고, 담긴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무척 감동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세계명작의 나라로 떠나기 위한 첫 관문을 그의 작품으로 고른 것이다.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 이반 투르게네프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라고 불린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도 특히 강조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한층 더 심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책은 모두 4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등장하는 [가정의 행복]은 여성과 남성이 처음 만나 느끼는 동경과 존경, 사랑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처음 느끼게 되는 두근거림이 결혼생활을 통해 어떻게 다른 감정으로 대치되어 가는지, 또한 그 와중에 생겨나는 혼란과 갈등을 해결해가는 모습을 통해 결혼생활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가치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희생과 고난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1859년에 쓰여진 것이지만, 약 15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정의 변화를 매우 잘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사실 표제작으로 쓰여진 [크로이체르 소나타]보다 [가정의 행복]이 더 인상에 남았는데, 그것은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일어나는  남녀사이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잘 표현해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표제작인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사랑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로,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인해 끝내는 그 아내를 살해하고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감정이 인간 안에서 얼마나 추악하게 변모해갈 수 있는지,  그 극한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꽃이 한 순간의 질투와 시기로 인해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과연 우리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불안감마저 느끼게 한다. 

[악마]는 사랑과 성욕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하기 전 관계를 맺었던 아름다운 시골 여인과 사랑스럽고 정숙한 아내 사이에서 고민하던 남자의 결단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직접 확인해보시기를 바란다. 마지막 작품인 [신부 세르게이]는 앞의 세 작품처럼 노골적으로 사랑과 성에 관해 묘사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역시 사랑과 성이며, 그 육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인에서 수사, 수사에서 부랑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삶은 그 모든 시기에 맞는 사랑을 갖는다>라는 다소 로맨틱하게 보이는 문구와는 달리,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이라고 하면 생각하기 쉬운 것들-변함없음, 영원, 낭만-을 그리기보다 사랑이 우리의 삶안에서 얼마나 진실한지, 그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점에서 나는 오히려 <사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갖는다>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사랑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원한 과제가 아닐까. 

대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세계명작의 매력에 눈이 뜨인 것 같기도 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고, 우리 삶에 숨겨져 있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파고들려 하는 것. 이것이, 혹은 무엇이 세계명작들이 갖는 공통조건인가를,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확인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